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섣달 그믐날

황금횃대 2009. 1. 28. 23:22

그럭저럭...(아, 나는 이 말이 너무 좋다.매일매일이 치열하면 정말 어떻게 살까) 설명절이 지나갔다.

부지런히 주머니끈 풀러서 사다 나르고, 다듬고 무치고, 데치고 찌지고 뽂고, 부치고 굽고, 삭히고,재고..

제수 음식이 정말이지 온갖 조리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하는 일임을 ,슬쩍 옷고름 새로 매고 차례상 다녀가는 조상님들은 알까? 할머니야 아시것지 할배들이야 와서 드시고만 가지 저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짐작이나 할라구. 

인천 사는 젤큰 형님은 오지도 않았다. 장조카란 놈도 덩달아 오지 않는다. 즈그 아부지 명절 제사는 여기다 맡겨 놓고는 그 집 식구들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믐날 밤에 끊어지는 허리를 빤드시 피면서 으스러지는 비명 소릴 꺼내들고 고스방 뒤통수에다 대고 차례지내러 오지 않으면 그녀르꺼 차례상에 묏밥도 안 올릴 거라고 꼬장을 댑다 부렸다. 고스방은 암말도 않한다.

 

그믐날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는 음악을 들었다. 오늘 어머님이 부엌문 앞에 옹크리고 앉아서 이거 저래라 저거 이래라 아무리 말씀하셔도 내가 마음 상해하지 말아야지 그냥 예, 예 대답만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독였는데 동서가 늦게 오고 고구마를 구을 걸 내어오는데 호박만한 걸 내오는거라, 내가 그거 크니까 두 개 굽지 말고 하나만 하라고 얘기하니 부엌 문앞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다 구우라고, 우리 애들이 안 먹지 다른 식구들은 잘 먹지 않느냐고. 나는 안다. 조카들은 그런 고구마부침은 안 먹고 고기 종류와 버섯 구이만 좋아한다는 것을. 하나만 하라고 무지르듯 동서에게 얘길 하고는 어머님께 쐐기를 박는다.

"어머님, 온 식구 다 와서 먹고 남을 만큼 부침개 구워 놓을테니까 어머님은 저기 가셔 계세요"

어머님은 좀 서운하셨으리라. 그깟 고구마 하나 더 깎아서 굽는게 뭐그리 힘들다고. 굽는게 힘든게 아니라 애써 재료 써서 굽고해도 그거 안 먹으니 그게 문제인거다.

 

못된 며느리가 그리 쐐기를 박아 놓으니 어머님은 종일 별 말씀이 없으시다. 이십년동안 일년에 너댓 번의 제사를 지내고 명절 제사 꼬박꼬박 지내는데 이제는 맡겨 놓아도 되련만.... 그러고도 어머님은 종일 부엌 문앞에 옹크리고 앉아 계신다. 보다못한 아버님이 한 마디 하신다. 뭐 거들것도 아닌데 이리 좀 비켜앉아 애들 왔다 갔다 하는데 걸구치잖아.

 

이제 조기만 굽고, 산적만 익혀서 후라이판을 씻어 놓으면 모든 일이 끝나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화다닥하신다. 저녁이 조금 늦은거다. 부엌은 복잡아서 거실에다 차례로 들어오면 먹는다고 상을 봐놓고 덮어 놓았는데 여섯시 반이 되어도 저녁을 주지 않는다고 아버님이 부애가 나신거다. 덮어 놓은 상보를 홱 걷어서 바닥에다 패대기를 치신다. 아니, 입 있으신데 밥 먹고 하자고 그말도 못하시나. 그저 야들아 저녁먹고 나서 나머지 하그라..하면서 부드럽게 이야기하시면 우리가 밥 차려 드리지 않고 우리일 끝나면 드세요 할까?  정 며느리한테 밥 달란 소리 하시기 싫으면 내도록 같은 쇼파에 앉아 종일 머리기대고 있는 어머님 한테 살짝 말하시면 되지 않는가. 하여간...굽고 있던 후라이판 내려놓고 국 데피고 밥을 퍼서는 상 우에 갖다 드린다. 저녁 삼십분 늦은게 뭐 그리 화가 나는 일이라고 저렇게 화를 내면서 진지를 드시나... 나중에 상을 치우는데 나도 부애가 어찌나 나는지 설거지 하면서 우당탕탕 소리가 곱지 않다.

 

종일 기억하고 좋은 마음으로 지내자며 아침에 들었던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은 기억에도 없고 나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솟아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한다.

대충(아, 나는 이 대충이란 말도 너무 좋아한다 ㅎㅎ) 설거지 해놓구선 동네 회관에 가서 운동기구 자전거 패달을 죽으라고 밟아댔다. 동대문에서 뺨맞고 서대문 자장구 패달에다 화풀이를 해댄다.

 

 

 

 

 

 

 

 

내 심사야 똥을 씹어 묵던 어쨌던 하늘에서는 흰눈이 펄펄 내리누나

어허, 그거참...설 부뉘기하나는 쥑여주는구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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