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크게 취하다

황금횃대 2005. 10. 4. 06:04

 

 

 

시월 초하룻날부터 초 나흗날까지 촌빨 날리는 이 심심한 동네의 군 소재지에서는 난계국악축제가 열린다. 이미 오늘의 날이 밝아 그것이 스러질 때까지 행사가 열리니 열렸다`로 맺음을 할 수가 없다. 지방 문화축제에 대해 새삼 그 종류나 의의를 여기에 말할 뜻은 없고, 하여간 그 축제 기간 동안에 새마을 협의회에서는 작은 개천 너머 뚝방 아래 천변에다 새마을 향토 야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동군내 열한개 면에서 포장을 치고 특색있는 음식으로 향토음식점을 꾸려 운영을 하는데 말이 특색이지 거개가 촌사람들 주머니가 부담스럽지 않는 가격 내에서 대중적인 음식을 만들어 밥과 국을 팔았다.

 

첫쩨 날, 둘째 날은 무난히 넘겼는데 어제, 그러니까 싯째날을 그만 조용히 넘기지 못했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할 때마다 사람들간의 반목과 갈등도 그러하지만, 매일매일 늦게까지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하니 한참 바쁜 농사철에 일하는 것보다 더 피곤하고 힘이 들었다.

말이 하기 쉬워 힘이 들었다지 하루만 거기서 종일 얼쩡거리다 보면 진짜 파김치가 되는데, 무슨 일이든 잘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혀 콧배기도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강제 규정이 없는 일이라 뭐라 말은 못하고 일을 몇몇 사람들이 치루고 있다.

 

그렇게 이틀을 버티고 싯쨋날인 어제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데 느즈막히 장사를 접으며 수고하신 부녀회원들에게 위로주 한 잔 돌린다는게 어쩌다 내가 취하고 말았다. 그냥 알딸딸하게 취하는게 아니라 내가 술을 마신 이래로 가장 크게 취하였다.

 

내 주량은 소주 두 병 스트레이트 완샷이라고 맨날 뻥치고 다니다가 피곤의 말미에 소주를 거푸 일곱잔쯤 마신게 화근이였다. 귀가 멍멍한게 둘러 앉아 같이 마시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저 아득한 동굴의 끄트머리에서 울려나오는 고양이 울음처럼 가늘게 울리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말들이 억하심정 내 가심패기에는 파문으로 번져 그 소리들이 크게크게 울리는 것이다. 누가 술이 술을 먹는다고 하는가 아니다. 술이 술을 먹는게 아니고 내 연민이 술을 땅긴다. 내가 취하는게 아니고 내 연민이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술이 사람을 쓰러트리고, 밤하늘의 별도 돌리고 사랑도 돌리는 사이 나는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나를 잡느라 안간힘을 쓴다.

 

맘껏 널부러지며 의식을 하냥 놓을 수 없는게 지금의 내 위치다. 하기 좋은 말로 황간면 새마을 협의회 총무고, 대추나무집 싯째 며누리고, 고운석이 마누라고 내 아이들의 엄마지만, 기실 그렇게 내 등에 얹혀 있는 표면적 지위를 사알짝 내려놓고 나를 들여다보면, 크게 취하여도 아주 나를 놓아 버릴 수 없는, 이러저러한 표면적 위치를 그렇게 취하고도 내려 놓을 수 없는 그게 나였다

 

임시 천막의 쇠파이프 찬 기운을 빌어 넘들 눈에는 벌써 평상시 총무의 모습이 아닌 것으로 이미 결정이 났는데 나는 안간힘을 다해 그것을 지켜보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부축해서 큰 길가에 나를 내려놓고 간다. 밤 12시 7분이다. 화물차 앞에 있는 작은 전자시계의 숫자가 깜박깜박한다. 내가 그걸 보고 시간을 말하니 옆에 사람이 <아주 취하진 않았네>한다. 그렇지. 아주 취할 수야 없지. 팔다리에 힘이 쏙빠지고 크라잉 넛의 노래처럼 이 밤이 취해 흔들리고 있어도 나는 정신을 차려야지. 얍!

 

집에 오니 스방님은 잔다.

여편네가 정신을 놓을 정도로 취해서 들어오는데 피곤한 고스방은 더 정신을 놓고 잔다

새벽에 일어나니 갈증도 없고 정신은 맑다

아침 닭이 울고 어린 새벽은 바람이 눈을 쓸어 내듯 그렇게  밤을 쓸어내고 느릅나무 형체를 드러내며 창문 밖에 와있다.

 

하루가 또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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