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장마 시작이래더니 어젯밤부터 빗줄기가 사뭇 굵어져서 잘못하면 삼일 만에 누는 내 똥가래만해지것어. 옥상에서 내려오는 플라스틱 수통으로 고인 빗물이 급하게 내려오는 소리가 귓가에 바로 들리누만
대강 씻고 이부자리 깔고 누워서 빗소리 들어보니 속은 시원햐. 일주일도 넘게 딸래미땜에 노심초사 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는 듯한 불안이 내처 떠나간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가 밥을 조금씩 먹어주니 내가 다 살것같네. 아이는 먹도 않고 저렇게 기운없어 하는데 나는 때 되면 밥을 잘 먹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염치 없는게 매끼마다 밥맛 없는 시늉이라도 좀 해봤으면 사람이 덜 거석하겠는데 그게 아니여. 이놈의 식욕은 지칠줄도 모르네 그랴.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지. 내가 먹고 힘내야 딸자슥 간호도 할게 아닌가 험씨롱. 그래서 햇보리도 한 가마니 사다가 들여놓고 엄니랑 나랑 푹 퍼진 보리밥도 해서 냄비째 식탁에 똑 떼다놓고설랑 상추 뜯어와 슥슥 비벼도 먹었지. 먹으면서도 이게 옛날 맘 편히 먹던 시절 맛은 아니구나 했지.
나는 또 생각보다 강해요. 내 목구멍에서 기침 한 오래기라도 켈럭, 하고 뜬금없이 나오면 부러 고서방 앞에 가서 없는 기침도 맹글어내며 엄살을 떨어싸도 식구들 아프고 이러면 고스방은 아주 벌벌 떠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재요. 그냥 아주 냉정하게 치료를 하고 그들의 아픔을 바라봐요. 근데 이번에는 내가 무서웠재요. 병원에 델고가 진료를 기다리는데 딸래미는 자꾸 했던 소리 또 하며 내가 백번도 더 알아먹게 이야기 한 내용을 깡그리 잊어먹고 다시 물어요. 아이구 사람 돌겠습디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를 바라보면 눈물이 저절로 괴여요. 딴때같으면 에미가 우는데 그냥 바라볼 아이가 아니지요. 근데 멀뚱멀뚱 쳐다만 봐요. 환장하겠다는 말을 실감을 했어요. 눈물을 찍어내고는 또 아이가 되풀이해서 묻는 말에 차근차근 예를 들어가며 또 답을 해줘요. 하루종일 그러고 나니 진짜 맥이 탁 풀려요.
저번에 아버님 편찮으실 때 영동 할아버지댁에 가서 물어봤어요. 그 분은 사람이 난 時를 가지고 풀이를 하더만요. 그 속내가 무엇으로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파트 할아버지댁에 가면 소소한 일을 물으러 오는 사람의 신발들이 현관에 수북합니다. 매번 그래요. 우리 엄니 말씀대로라면 그럭저럭 용하게 잘 맞치고 하라는대로 하면 뒤끝이 깨끗해서 좋다고 하십디다. 울 엄니 아버님 편찮으실 때 병원가서 이검사 저 검사 다 받아봐도 안 되면 거길 가서 해결하시곤 해요. 그런데도 나는 그런거 안 믿거등. 근데 내 딸이 그러니까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아녀라. 병원에서 약처방 받아 고물도 떨어지기전에 영동 그 할아버지집으로 아버님하고 시고모님 오시라해서 갔세요.
그럭저럭 거기서 지압치료를 받고 일주일이 지났네
딸아이는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를. 첨 같아서는 하늘이 그대로 무너져내릴 것 같더만. 밥도 먹고 잠도 자니 너무 좋아요. 공부? 어이구 공부에 아주 디였어요(데였어요) 진짜 디뻣거진다는게 뭔 말인고했는데 실감을 했네. 공부 못해도 괘안코 안 해도 괘안아. 살다보면 다 제가 뭘 해야할지 알 수 있는거니까.
엿새째 그 집을 가는데 상민이 혼자 오래요
상민이가 아직 그런 것은 첨이라 좀 이상한가봐요.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꾸 안 갈려구해서 아이를 구슬려 겨우 먼저 보내고 내가 뒤에 따라가는데 학교에서 버스정거장 거리로 두어정거장 될거라 그 집이.
저는 택시타고 가라고 하고 내가 골목에서 가마이 숨어 보니까 차를 타고 가요
나는 그 길을 걸어서 가는데 어찌나 덥던지. 집에 도착해서 헉헉거리며 의자에 앉았으니 상민이는 지압하는 보살한테서 지압치료를 받고 그 할아버지가 내 손을 가마이 잡고는
"애썻다. 이제 저 애는 괘안을거야. 나쁜게 다 나가고 깨끗해졌어"
내가 웃으며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네
그러더니 날 보고는
"자네는 뭐하나"
"집에서 살림하고 농사지어요"
"아니..그거 밖에 안해?"
"녜.."
"어이구..그 좋은 재주로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누"
하며 내게 무한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뭐 짜드라 답답하게 살지도 않은 내 인생의 이십대 후반부부터가 별안간 떠 오르면서 눈에 눈물이 왈칵 괴이여.
"그래도 잘 참고 살았네...장 해."
"그냥 답답할 땐 인터넷으로 글도 쓰고 그랬어요. 그러면 좀 해소가 되고 그러니까.."
"그래, 그래, 잘 했어. 참 지혜롭게 살았네 잘했어! 자넨 말이야 붓으로 하는 일은 다 잘 돼. 타고 나면서 재주가 그쪽으로 트였어. 뭘 해도 잘 하는데... 사람을 끌어모으니 장사를 해도 크게 성공을 했을거구 부동산을 했으면 지금쯤 황간에 안 살아. 못되도 구미정도는 나가 살 사람이야"
"예...재주는 무슨 재주요 그냥 애아빠가 엄청 착해요. 딴 짓 절대 안하고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속마음은 따뜻한거 아니께 그냥 저냥 살았세요."
"잘했어...니가 다 착해서 그런거야"
"아니예요. 저는 살짝살짝 나쁜짓도 많이 했는데 애아빠는 정말 그런거 없이 착해요"
"알아 알아.. 그래도 니가 착해. 무엇이든 활동을 했으면 고기사 보다 훨 나아. 더 성공을 했을겨. 그러면 그놈은 그저 놀고 먹어도 될 팔자인데 쩝..."
어제, 치료가 다 끝나고 또 나를 보더니 재주가 아깝네...하신다.
늦은 밤
고서방 샤워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툴툴 털며 에어컨을 틀며 의자에 앉는데 내가 할아버지 하신 이야기를 하자..첨에는 솔깃해서 ..그럼 내가 내 복을 까불었네. 그저 놀고 먹을 수 있는데 지금 이렇게 고단하게 사는걸 보면...하더니 금방 마음이 바껴서.
"나는 그런 꼴 못 봐. 여편네가 돈푼깨나 번다고 이럴거 아녀. <여보 오늘 회식이 있는데 아들 밥 채려주고 자요..> 어이구 나는 내가 고단했으면 고단했지 그런 꼴은 못 봐.
그냥 웃어 넘기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자꾸 곱씹어보는거지
지금이라도 하면 길이 열릴까. 무얼해야 말년에 서방이 놀고 먹을만큼 돈을 벌어 편하게 해줄까....
사람이 그려. 모를 때는 그냥저냥 살다가. 한 마디 주워 들으면 괜히 머리 속이 어지러워져. 내가 고스방한테 시집와서 내인생이 이렇게 쪼그라진 뒤웅박같은가. 뭐 그런생각들. 식자우환이여ㅎㅎㅎ
그러나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서방이 응근히 하는 저 한 마디를 새겨 들으면 짜드라 억울할 것도, 아둥바둥 머리 쓸 것도 없네. 뭐라고 했냐구?
"우리가 뭐 언제 텀벙텀벙 사치스럽게 살라구 돈 벌구 모으나. 그저 자식 공부 시키고 , 건강헐 수 있게 먹을 것 먹고 영 추하게 안 벗고 살면 되지. 사람 헐 도리하면서."
그려 고스방.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 벌어다 준 돈으로만 살거야. 그러니 거미줄 안 치게 잘혀.
(솔직히 한 달 선거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아침마다 허둥되며 출근할려니 죽을 맛이였어 ㅎㅎㅎ)
*이렇게 주끼면서 비오는 아침을 시작합니다^^
<그 동안 딸아이가 좀 아팠어요. 먹도 않고, 자지도 않고 마음이 산란하고 우울해서 병원까지 갔다왔어요.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우리집 식구들은 아직도 놀래서 얼굴이 하얗습니다. 차츰차츰 좋아지리라 믿어요. 엄마가 안 그러니 딸도 엄마 닮겠지요? 그리고 내가 좀 전염성이 강합니까. 원래 엄마하고 딸은 닮는거래잖아요. 얼굴도 많이 닮았는데 성격도 물론 그렇게 되겠지요. 지금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나도 정말 많이 놀랬어요 블로그 오시는 분들 많이 궁금하셨지요? 안 궁금했다해도 괘안에요^^ 아이들한테 공부, 공부, 그러지도 않았는데 학교나 이런데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봐요. 엥간흐면 애들 볶지 말아요. 건강하게 착하게, 가치관이 바른가 그렇지 않는가가 중요한 거래요. 옛날부터 못난 자식이 부모 모시고 산다고 했어요. 자나깨나 아이들 조심. 자는 아이도 다시 보자. 제가 요즘 그러구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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