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7. 4. 16. 16:08

 

 

1.퇴원

 

저번 월요일에 어머님이 다시 입원을 하셔서 오늘 딱 일 주일만에 퇴원을 하시다.

반찬하고 갖다 드렸어도 통 못 드시어서 오늘 보니 얼마나 야위었는지 눈물이 난다.

분홍색 티셔츠가 잘 드실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늘 보니 너무 헐렁해져서

옛날 <시관이와병호의 여행> 만화에 나오는 시관이 난닝구처럼 어깨자락 한 쪽이 드러날 듯 하다.

그걸 보니 또 속이 쓰리다.

퇴원 수속하러 시동생과 같이 짐 꾸려 올 가방을 준비해 가는데 고스방은 전화를 네 번이나 한다

"엄마가 살이 빠져도 너무 많이 빠졌어. 올 때 저번처럼 버섯전골집에 들러 점심 먹구 와

그리고 김천 시장에 순대집에 들러 순대도 사 오고. 그 집 순대는 엄마가 좀 드시더만"

버섯전골집에 가서 마악 자리 잡아 앉는데 또 전화가 온다

"짜게 드시면 안 되니까 주방에 부탁해서 심심하게 해 달라구 그랴"

저번 주에 엄니랑 고서방이랑 그냥 병원 갔다 올 때 직지사 꽃 구경하고 점심을 이 집에서 먹었는데

어머님이 아주 시원하다 하시며 국물을 드시니 이번에도 들렀다가 오라구 그러네

그 때도 울 어머님 앉아 있고 좀 있으니 다른 할머니가 들어오시는데 호호 백발이셔

그래도 그 할머니는 꼬부라져도 당신이 걸어 들어오고 화장실도 혼자 가시니 얼마나 좋아

같이 들어오던 그 할머니의 딸이 울 어머니를 보더니

"아이고, 여기 할머니도 연세가 많으시겠네. 올해 몇이세요?"

"울 엄니 올해 여든다섯이세요"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울 엄마는 올해 아흔이세요"

그제서야 울 어머니

"아흔이든 백살이든 저렇게 걸어다니면 얼마나 좋아..."

오늘은 식당 가니 그 할머니는 안 오셨는데 울 어머니 앉아 계시는데 정말로 어찌나 폭삭 야위셨던지.

 

 

2. 시고모님

 

어제는 서울 시고모님이 팔순이셔서 잔치를 한다고 토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네

급하게 표를 예매해서는 어제 아침 열시오십분에 영동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지

황간 사시는 세째, 네째 고모님 뫼시고 갔어

세째고모님은 올해 일흔 여덟이시고, 막내 시고모님은 일흔 여섯이여

서울에 내리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 천상 내가 갈 수 밖에

우리집은 아버님이 가셔야 하는데, 아버님도 서울 지리 모르는 건 매 한가지여

봉천동 국민은행 맞은 편 산만데이로 집들이 빽빽해

서울 사람들 참말로 재주가 좋아요. 그 산만데이에 집을 그렇게 높이 쌓아서 살고 있으니.

한시 반에 영등포역 내려서 전철 타고 봉천동 고모님 집에 찾아가니 두시 반이 넘었네

팔순 잔치는 낙성대 우리은행 6층 식당에서 하고

저녁 여섯시부터 한데요

보통 뷔페식당이래. 사진을 찍는다, 어머님 은혜 노래를 부른다. 사우하고 아들하고 나와서 노래 한 곡하며 재롱좀 떠세요 하며 사회자가 반주를 틀어주며 추임새도 넣구 그러잖여.

아들 셋에 딸 셋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은 고만 죽었대요

큰 아들은 젊어서 고모님 속을 그렇게 �였고 그러다 보니 결혼도 못하고 혼자 늙었어.

둘째딸도 유전병이 있어 고만 딸 하나를 낳고는 소박을 당해서 폐인이 되다시피했는데 그래도 이혼 하고 엄마하고 같이 살면서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네.

집구석 들여다보면 서리서리 사연이 안 �힌 집이 어딧겠냐마는 참말로 그 고모님 고생을 많이 하셨다구.

고모님이 세째 딸 낳고 난 뒤, 시할머니, 그러니까 울 시엄니의 시엄니께서 쌀을 부쳐놓고 손녀 딸 보러 간다고 물표를 가지고 서울 갔더니, 서방이란 놈은 기집질을 해서 나가 딴년하고 살림을 차렸고, 산모라는 딸은 배가 곯아서 퉁퉁부어 앉은뱅이가 되었더래. 까칠한 시할머님이 그걸 보고는 눈이 뒤집혀서 기가막혀 앉았는데 마침 딴살림 하는 집에서 고추장을 쪼맨한 양재기에 갖고 왔더라나. 고만 그 고추장을(그 때 일본사람집 이층에서 살았는데)아래층에다 팍 쏟아 내삐리고는 새밋가에 양재기를 가져가서는 빨래방망이로 팡팡 뚜둘기패서는 쪼그랑박재기를 맹글어놓고도 성이 다 안 풀려서 버선발로 사우 딴 살림 난 곳에 찾아가서는 사우고 첩년이고 머끄디 다 쥐뜯어놓고서는 같이 간 막내아들(시삼촌)에게 고모님 업으라고 해서 시골로 내려왔다네.

내려 오는데 갖 낳은 딸이 응애응애 우니까 저집 핏줄은 꼴도 보기 싫다며 디지든지말던지 떼놓고 오라구 고함을 질렀는데 작은아버님이 그 아기를 보니 새까만 눈이 반들반들 자길 쳐다보는데 차마 떼놓고 못 와서 델고 왔다네.

 

우리집에 와서는 여섯달을 오계닭 소주내려서 사람 몸보신을 시켰지. 그 뒤수발을 누가 했것어? 당근 울 시어머님이 하셨재. 누워서 시누이 똥오줌 받아내면 어머님은 비위가 상해서 어떨 땐 하루종일 굶었다네

세월이 세월이라  시고모도, 울 시엄니도 무진장 고생하며 살으셨네.

 

동생 등에 업혀서 온 시고모님은 여섯 달 뒤에 제발로 걸어서 아이 델고 서울로 가고, 지금까지 건강하신데. 거 팔순잔치 이런거 하면 꼭 어머님 은혜 노래 부르잖여. 그 노래를 그 때 까만눈 똘망똘망 뜨고 쳐다보던 세째딸 사우가 불러. 노래를 참 잘 부르네. 아들, 딸, 사우, 며느리들이 따라부르면서 다들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 그 큰 아들말여. 노름이며 뭐며 고모님 어지간히 애를 먹였어야지. 그 아들이 젤루 눈물을 많이 흘려. 나도 눈이 시큼시큼해지는겨. 작은 어머님도 우시고, 두 고모님도 우시고... 내 속으로 그랬지. 어이구 그 때 애나 좀 먹이지 말고 지금 울지 말지.

엄니 한테야 아무리 잘해드려도 어머님 은혜 노래 부르면 눈물 안 나올 자슥이 과연 몇이나 되냔 말이지.

그저 으앵 소리 내어 모태에서 지태로 나올 때 우린 벌써 엄니에게 엄청난 아픔을 엥겨주고 나오잖여.

그러니 그런 것들이 모두 태어날 때 내 유전인자 속에 다 기록이 되어 있겠지. 그러니 그 아픔 생각하면 엄니 노래 부르는데 눈물 안 나올 사람이 어디있겠냔 말이지.

그래도...여튼 좀 미웠지. 밤차 타고 영동역에 도착하니 열두시여. 밤 열두시. 비가 부슬부슬 오네

이쁜 고서방이 우리들 태워 갈라고 역 앞에 차를 대놨네. 뭣이 못 마땅한가 입이 댓발 나왔어

그래서 내가 잔치분위기 전달하며 자꾸 주끼니까 얼굴이 풀어지네. 뭣땀시 그럴끄나..

 

 

 

3.시아버지

 

어제 아침에 식사를 하시면서 내게 물으시네

"상민에미야,  엄마 시계는 왜 집에 있어?"

"아, 그거요. 심전도 검사하고 엑스레이 찍을 때 쇠붙이 있으면 안 되니까 입원하시던 날 빼놓으셨는데

제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가 그제 방에 놔둔거래요"

"아...나는 그것도 모르고...나는 시계하고 건강목걸이만 있길래...느그 엄마가 죽었는 줄 알았어"

"아이..아버님도 어머님이 왜 돌아가셔요..."

 

어쩌면 아버님은 겁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늘 자신의 몸처럼 어머님도 같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