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추어탕과 시어머니

황금횃대 2004. 9. 16. 21:47



대구에서 살던 대구가스나인 나는 추어탕을 억수로 좋아했다
결혼하고 난 뒤는 그 추어탕이 몸쌀이 나게 그리워 어쩌다 외출을 나가면
면내 어느 구석에 추어탕 하는 집이 있는가하고 몰래몰래 눙깔을 휘돌렸던것이다
그래도 그 추어탕을 먹지 못했다

못 견디게 그리운 그 맛 추어탕을 친정엄마가 가끔 해결해 주시기도 했는데
먹고 싶을 때 못 먹는 억울함이야말로 촌구석에 사는 비애를 팍팍 느끼게 해주는
단초이기도 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군에 있는 영동장에도 더러 들락 거리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는 펄펄 살아 뛰는 미꾸라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이를 둘이 낳고 난 뒤, 집을 새로 짓는 공사를 할 때 였으리라
둘째 놈이 두살이 넘도록 내 젖을 빨아 먹었으니 젖도 허하고, 속창시도 허하고
두루두루 인생이 허하여 나는 큰 맘을 먹고 미꾸라지를 오천원어치 한 소쿠리
사 가지고 그 놈의 추어탕을 먹어 보겟다는 일념으로 다른 찬거리들과 함께
등때기 땀이 나도록 그것들을 추들고 집으로 버스를 타고 왔다

미꾸라지를 본 시어머님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 씹은 인상이 되셨다
그도 그럴것이 어머님은 충청도 토박이, 그것도 황간에서 골짝으로 몇십리를 들어가야
나오는 촌동네 독골이란 곳에서 바다 한번을 못 보시고 황간 시내로 시집을 오셨으니
바다 회는 물론이거니와 민물 고기로 매운탕을 한 것조차 비린내가 나신다고 입에 대지를
않으셨던 것이다. 근데 초짜 여편네가 추어탕을 끓여 먹어 보겠다고 펄펄 뛰는 미꾸라지를
한소쿠리 사와서 마악 그것들을 양푼에 비워 놓는 것이니 얼마나 인상을 찡그리시겠는가
그러시기나말거나 나는 오직 추어탕을 먹고 싶은 일념으로다 미꾸라지가 담긴 양푼이에
소금 한 주먹을 화악 뿌리고 뚜껑을 닫았다

친정엄마랑 몇번의 통화 끝에 추어탕이 완성이 되었는데, 어머님은 그것을 쳐다 보시지도
않을 뿐더러 같은 식탁에서 내가 먹는 것만 봐도 비위가 상한다는 듯 인상을 쓰시는거다
그러더니 둘째날이 되자 드뎌 내한테 한 말씀 하시는데
"아직도 그 국 얼마나 남았냐?" 이러시는거다

그래서 그게 너무 속이 상해서 국솥을 바깥으로 가져가 개죽통에 들이 부어 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추어탕을 집에서 끓여 먹는 것을 포기 하였고, 간혹 아버님이 대전 병원에
입원을 하시면 병원 앞 추어탕 집을 이용하고, 어머님이 김천 병원에 입원을 하셨을 때도
나는 병원 아래 동네 추어탕 집을 열심히 이용하였다.

그러다 얼마전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퇴원을 하는 날, 아버님이 추어탕을 드시고
싶어 해서 내가 가는 그 집으로 가서 드셨는데, 너무 맛있다고 집에 와서도 그걸 먹었으면
하고 말씀을 하시는거다.
어머님이 내게 물으신다. 미꾸라지가 영동장에는 나올까...하고

지난 14일 영동 들렀다가 시장에 가니 미꾸라지가 제법 흐벅진게 살이 오른걸 팔아서
그걸 또 한 소쿠리 사가지고 왔다
미꾸라지를 냄비에 붓고 소금을 넣고는 뚜껑을 재빨리 닫지 못해 미꾸라지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부엌바닥에서 꾸물대는 미꾸라지를 어머님이 손으로 잡으신다. 나는 고함만 지르고 있고.. 어머머머, 어머낫!
어머님이 미꾸라지를 다 잡아서 냄비에 넣으시고 그 때부터 추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가시가 없게 하나하나 미꾸라지 살을 발라내고 나머지 뼈를 믹서기에 갈아서 체에 받쳐 넣고
이 모든 과정을 어머님은 아버님이 드신다는 이유로 인상한번 찡그리지 않고 해 내시는거다
그리고 그 국을 다 끓였을 땐 한 그릇 퍼서 드시기가지 한다.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십년전 그토록 내가 먹고 싶어하던 추어탕을 어머님 때문에 쏟아버리고, 적어도 추어탕만큼은
내 속에 가라앉은 그 때의 앙금을 쉬이 긁어내지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영감님 드신다는 말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미꾸라지를 쭈물딱해서 요리를 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햐...벌린 입을 다물지 못해 그 속으로 파리새끼가 들락거릴 지경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퍼뜩 입을 다물며 들락거리던 파리를 한마리 잡으면서,
까짓 묵은 원한(?)은 풀어내고 뜨끈뜨끈한 추어탕을 한 그릇 퍼서 밥을 고만 말아 먹고 만다
역시 추어탕은 내가 끓여 먹는거 보다 다른 사람이 끓여 주는게 더 맛있어! 뭐 이런 감탄사나
실실 뱉어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