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
왠 곰솥?
으흐흐흐흐흐흐...상이지라.
무슨 상?
씨름 단체전 3등 먹었재요
오늘 심심촌빨날리는 촌동네 황간에서는 면민체육대회가 열렸세요
구름이 햇볕을 가려 도대체 면장이 어느 하느님한테 빌어서 이렇게 훌륭한 자연 챠일을 매련했는지
죙일 날이 살짝 흐려서 먼지나는 운동장을 뛰어댕겼어도 햇볕에 눈 한 번 안 찡그리고 운동경기를
했재요.
면민체육대회한다고 이장한테 공문은 삼월 말쯤 전달이 되었는데, 올해 우리 마을 이장 고원X씨가
농협 감사로 덜컥 당선이 됐시유. 이장 연합회 회장도 하고 이젠 농협감사자리까정 하게 되었으니
동네 일하는 것 보다 외부 인사랑 만내서 술 한 잔 한다는게 급기야는 날아가는 까마구도 내 술 먹고
가그라잉~ 하는 경지에 이르고 보니, 이틀에 한 번은 곤드레만드레 히트송을 부르며 살았재요
그러니 동네 일이 어떡허것시유. 체육대회 할라믄 선수 선정도 해야하고 경비는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하는 세부 계획이 나와야하는건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동네 청년회에서 걱정이 되어 좀 의논을
하자고 여쭈면 버럭맨이 되어서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할팅게 걱정 말그라 하며 손사래를 친다니.
어쩔 수없이 내가 부녀회장이니 마을 개발위원 회의 소집해서는 김치찌개 한 냄비 바수며 급하게
회의를 하였재요. 그랬더니 오늘 체육대회 하는데 입장식에 마산리 마을 생기고는 최고로 많은 인원이
입장식에 참석을 했다 하드만요.
아침 먹고는 바쁘게 회관으로 달려가 어제 늦게까지 음식 준비 해 놓은 것이며, 가마솥에 철판으로 만든
아궁이, 가스 버너, 프로판가스 통에 설거지 다라이, 동네 그릇, 숟갈에 물통...밥상까지 모두 싣고
황간 중학교로 향합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마을별로 천막이 쳐저 있고 화물차들이 마당으로 진입하고 각자의 마을 천막에
살림도구를 내려놓기 정신 없어요. 사람이 많으니 말도 많재요?
올해는 와 이래 구석팅이에다 포장을 쳐놨노. 쪼매만 저짝으로 옮기만 안 되겠나? 맨날 저기 담벼락 옆에
자리 잡다가 이쪽에 자리를 욍겼으니 동네 사람들이 나중에 오면 찾아 오겠나...웅성웅성. 거기에 따른
이유도 많재요.
바닥을 깔 동안 아지매들은 척척 밀가리를 후리서 부침개 구을 준비를 하고, 얼음을 깨서는 아이스박스에 음료수들이 채워지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운동장 바닥에서 30센치미터쯤 저공 비행을 할 즈음 상신떡방앗간에서 배달 되어 온 쑥절편이 노란 고물 단장을 하고 접시에 담기져. 찔깃찔깃한 쑥떡을 덥썩
한 입 베어 물고는 부침개 한 장 뒤집어요.
부침개가 마침내 한 장 부쳐지면 여기저기서 손으로 찢어 또 입으로...좀 싱겁다, 아이다 이만하면 됐다..좀 간간해야 하지 너무 싱거우면 기역질나...소금이 한 주먹 휘익 뿌려지고 고무장갑 낀 손이 쓰윽 다가가면 소금을 녹이려고 반죽이 이리저리 뒤넘겨치지지.
윷놀이 선수들이 맨 먼저 출정을 하고 운동장 뒷켠에 자리잡은 씨름장에서는 왕왕 마이크 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해요. 동네별 씨름 선수들은 씨름장으로 출전해 주세요! 마이크를 잡은 정진남씨의 목소리가 영양분 없는 머리카락처럼 갈라질 즈음 프로그램을 손에 들은 이장들이 선수들을 사정사정해서 끌고 옵니다. 아무라도 그런거 잘 안 하려고 해요. 촌동네 젊은이들이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마당에, 그것도 씨름을 하겠다고 웃통 걷어 부치고 다리에 샅바를 걸 젊은이들이 몇 없습니다. 오죽(오죽님이 아님)하면 마흔다섯 이 나이에도 내가 여자 선수로 출전을 하겟냔 말이지요.
동네마다 씨름 선수를 구색맞게 갖출 수가 없으니 몇 동네 어불라서 한 팀을 만듭니다. 대략 한 동네에서 선수 한 명쯤만 선정해서 여자 하나에 남자 둘, 이렇게 한 팀을 이룹니다.
우리는 소난곡하고 마포실 동네하고 한 팀이 됐는데 마산리에서 선수 두 사람이 나가고 소난곡에서 선수가 한 명 나왔는데, 이 선수로 말할것 같으면 그냥 떡대만 좋지 씨름이라고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역시나 며칠 전에 결혼한 우리동네 쌍둥이 중 장가를 가지 않은 동원이가 어거지로 선수로 나왔어요. 그냥 참가만 해도 10점을 주니까..
첫 경기에서 나와 상대를 한 아줌마는 내보다 나이가 쪼매 많거나 동년이거나 그랬을 것인데, 옷을 밀리터리 룩으로 입고 나왔고 팡팡한 체격에 머리는 해병대 모자 스타일을 거꾸로 쓰고 나왔세요. 키는 나보다 적지만 어찌나 다부져 보이던지...내가 좀 겁을 먹었지요. 나도 씨름 안 한지 한참 되었잖여.
근데 샅바를 잡아 보니 알겠어라. 나는 다리 샅바를 깊숙히 손을 넣어 확 끌어 당겨요 다리가 움직이기 불편하도록, 첨 하는 사람들은 그냥 샅바 잡으면 되는 줄 알지만 씨름 선수들 샅바 잡는데 목숨 겁니다.
왜 그렇겠어요? 샅바 잡는 것 하나로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작정이 되니까..ㅎㅎㅎ
이러니까 내가 아주 씨름 선수 같지요?
그 다음 단계에서는 어깨를 확 상대방 몸 깊숙히 박아 넣어야 해요. 이런거 예전에 군 씨름 대회에 나갔다가 내가 당하니까 터득하게 된 것이라. 어깨 박아 넣고 샅바 땡기고...다리 일으켜서 시작 호각을 불면 힘을 쓰는데...그 아지매 내한테 두 번 다 졌어요. 두 번을 내리지더니 화가 나는가 시합 끝났는데 다시
하자며 내게 막 달겨 들어요. 웃기는 아지매여~
그래서 준결승전에 진출. ㅎㅎㅎ 뭐 동네 씨름을 한 판만 이기면 준결승행입니다.
준결승전에서는 상민이랑 같은 학년의 고삼 여학생하고 시합을 하게 되었재요
덩치도 내 보다 크고 샅바 잡고는 미는데 힘이 만만찮아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저쪽에는 이제 마악
물오르는 근육으로 밀고 들어오고, 나는 이제 있는 진, 없는 진 다 소진하고 허벅허벅 바람 든 무같은
그런 살덩이로 힘을 받아쳐야한다는.
역시나 호각 소리에 일어나 흔들어보니 힘이 만만찮아요. 둘다 어지간히 황소처럼 버티다가 후다닥 움직였는데 나도 힘이 만만찮어, 오즉하면 고스방이 날 보고 맨날 뚝소라 그랄까.
첫째판은 내가 이겼재요. 호흡이 가쁘고 힘이 들어서 씩씩 거립니다.
씨름선수들 한 판 싸우고 나면 배가 불룩불록 들락날락하며 복식호흡을 하잖아요. 나도 그랬다우
물 한 모금 마셔 입 가셔내고 다시 한 판 붙었는데 내가 좀 위태로왔어요. 힘이 빠지니 버틸 재간이 있어야재. 한 순간 뒤로 밀리며 휘청하는겨. 근데 밀어 부치는 그 애도 힘이 부친다는 직감이 순간 드는거라
아줌마가 뭔 힘으로 살간? 깡다구 아녀? 사나흘 배룻다가 쑥! 하고 애기를 뽑아 내는 힘...그 힘이 그 고딩 츠자 한테는 없었재요. 두 번째판도 이겼어요. 모래판에 두 덩치가 엎어지니 모래알은 사방으로 튀어 나갑니다 그려.
타자 치는데 지금도 견갑골이 뻐근허니 아프고만요.
와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마산리, 마산리, 하는 응원의 소리가 운동장 구석을 비잡게 만들어요
나는 이겼지만 나머지 남자 선수들이 다 지는 바람에 아깝게 삼등을 하고 말았재요
부상으로 뭘 주길래 받아 부피봉께로 보나마나 플라스틱 김치통이겠지...했는데 에그머니나
아니네요, 스뎅 곰솥이래. 황간 씨름협의회가 재산이 좀 모였나벼 ㅋㅋ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행운권 추첨도 끝이 나고 종일 발끝에 일어나는 먼지를 잠재우며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와서는 상 우에 얹어 놓고 상 탔다고 사진도 찍고, 가마히 생각하니 상인지 뭔지 잘 모를것 같아서
쉬래기통에 집어 넣었던 포장 종이 다시 끄집어내서 쓱쓱 펴서는 3등상 증명할 사진도 찍어요.
오랜만에 몸 풀고 나니 기분이 가뿐합니다 그려. 살면서 이런 환희가 한 번쯤 있어 준다면 생이 훨씬 덜 심심할 것 같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