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늘 시할무이 제사래요. 파전 몇 넙데기 굽는데 파 속에 물이 치지직 나와서 뜨거운 기름하고 합체를 하니 폭발을 하네, 밀가루 물을 새,새 부어 줄라고 쪽대가지고 밀가루 물을 떠가지고 파대가리를 자근자근 눌러가며 다독거리는데 폭발한 뜨거운 지름 파편이 내 손가락에 사방 튀네, 에이 씨~X! 제사 음식 만들며 욕하면 종일 서서 공들인 것들이 한참에 다 날라 갈려나..사람이 그렇습니다. 매번 잘 하다가도 순간에 복을 까불어 먹어요.
어제밤에는 난산중인 산모처럼 산천초목이 비를 뿌리며 몸부림을 치더니, 오늘은 잘 생기고 멋진 아이를 떡하니 낳고 난 뒤의 산모처럼 날씨가 환하네. 어린 느릅나무 잎들이 빗물을 배불리 먹었는지 햇볕에 잎사구 하나 하나가 어찌나 윤이 반질반질 나고 부드러운지, 손 뻗어 몇 가지 훑어다가 쌀가루 묻혀 포옥 쪄먹어도 좋을 듯하이. 허기사 느릅나무 잎은 옛날 보리고개 때 구황식물이기도 했다네. 여린 잎 훑어다가 사카린 가루 넣어 탈,탈 무쳐서 베 보자기 깔구는 밥 우에 폭 쪄서 내 놓으면 배 고픈 대가족 어느 손에 찢어 발겨졌는지도 모르게 뒤안 고추장 단지 뚜껑 만한 느릅나무잎떡이 단순에 사라졌겠지.
그 없던 지난 시절의 살림을 틀어쥐고, 수채구멍에 밥알이 떨어져 있으면 주워다 씻어서 먹으라고 종주먹을 들이 대었던 시할머님. 시어머니는 이날 입때껏 그 시절 시집살이 한 이야기를 옆구리에서 퍼 올려 내게 얘기를 하시네. 지독한 시집살이..
올해도 시할머니와 시엄니가 같이 가서 캐 옮겨 심었다는 석류나무에도 새 잎이 나고, 나무야 새잎이 나지만 한번 세상을 버린 사람은 새잎처럼 다시 볼 수 없는 일. 며칠 전까지는 엄니도 위태위태하더니만 오늘은 반짝 웃어보이기까지 하시며 동네 회관으로 나들이 가시다.
먼 산과 푸른 하늘이 훤히 보이던 담장 너머는 이제 우렁우렁 우거져가는 나뭇잎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