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어제부터 포도일이 시작됐다. 다른 집에는 벌써 진도가 이따만큼 나가서, 나는 그들의 진도만큼 따라 잡을려면 반 죽었다. 그러나 뭐 한 두해 그렇게 살았는가. 방에 앉아 포도골 생각하면 이제 시작한 일이 아득하지만 그 바닥 생리라는게 별거 아니다. 부지런히 밭 골에서 밍기적 거리면 손이 올라가고 발이 문때서 농사는 지어지게 마련이다. 일이 조금 늦고 바쁠 뿐이지 나중에 포도 따 먹는 일은 다 한 시기에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일을 하다가 허리가 뽀사지게 아프면 앞으로 뭄을 굽혀 이리저리 흔들며 뒤로 손을 돌려 허리를 쿵쿵 두드리다 다시 일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말라 붙은 소똥 거름 위에 퍼대지고 앉아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포도 골 안쪽으로도 한 번 째려보고, 그래도 일어나기 싫으면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서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서울 숙희언니에게 전화했더니 깜짝 놀랜다. <내가 방금 니한테 문자 보낼라고 마악 전화기로 손을 가져 가고 있는 중이였어> 텔레파시도 이쯤 되면 명품텔레파시이다. 어쩜 이렇게 쌍방간에 기막힌 소통이냐.
두어골 손질하고는 또 양샘이 생각이 났다.
<나 지금 포도밭에서 일해요. 가을에 맛난 포도 같이 먹게 얼릉 나으세요> 대답이 올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나면 전화기를 누르고, 문자를 보낸다. 나중에 언젠가는 새임이 볼거 아닌가. 부재중 전화가 찍힌 것도 알 것 아닌가.
저녁 운동도 너무 피곤하니까 가기가 싫다. 고스방은 옆에서 여편네가 안 가니 나도 운동을 못가겠네 한다.
아이, 여편네 안 가도 혼자 가서 운동장 돌면 되지 꼭 여편네 옆에 끼고 가야하나? 혼자서도 할 수야 있지만 거기 운동하려고 나온 힘센 여편네가 날 으슥한데 델고가서 잡아 묵으면 어떡해. 엄살 좀 고만 떨어요. 정 그게 무서울 것 같으면 등판에다 -난 잘 잣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써 붙이서 댕기던가.
아닌게 아니라, 내 몸이 피곤하고 개운하질 않으니 요샌 고스방 따로, 나 따로. 이렇게 따로 국밥이다.
어쩌다 좀 찝적거리면 갖은 포악(?)을 떨어 스방을 밀쳐내고 있다. 그러니 고스방도 자존심이 있지 이제는 여편네에게 사정도 하기 싫은 모양이다. 나는 펜하고 좋구만 고스방 물건은 씨벌겋게 녹이 스는거 아닌가 몰라.
긴의자에 누워 살풋 잠이 들었던가. 궁뎅이 뒤쪽에 던져 놓은 핸드폰에서 진동소리가 나는 것 같아 퍼뜩 잠이 깨어 눈을 뜨니 고만 끊어졌다. 보니까 양샘이다. 얼른 전화를 걸었지.
첫 목소리를 듣는다는 양샘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찌나 반갑고 대견하고 고맙던지..둘이서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네.
나 23일 인천가요. 시아주버님 제산데, 제사지내고 새임한테 갈게. 그 때봐요. 그 땐 둘 다 울지 말고 웃으며 이야기하기야요 알았재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내게 목소리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새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