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만 해봐라
지난 주 일주일간은 꼬박 옥천을 들락거렸다. 영동 할아버지 밑에 있던 여자 보살이 새로 절을 차린 것이다. 영동 할아버지는 이제 절(寺)은 그만하고 남은 여생일랑 산천을 돌아 댕기며 살거라고 한다.
엄니께서 계속 식사를 못하시니 우리로는 벼라별 짓을 다해도 안 된다. 어떨 땐 겨우 삼킨 것을 다 토해내신다. 입 안에서 두르륵 몇 번 궁글리면 꼴딱 넘어가는 그 음식들이 속에서 안 받아 주니 넘기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도 기운이 없으니 영동 할아버지한테 가 보자 하신다. 병원에 가도 아무런 차도가 없으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거라. 영동에 전화하니 할아버지가 나한테 이제 오지 말고 옥천 보살한테로 가서 지압 치료를 닷새 받고 오라는 것이다.
아버님이 다행히 우리를 태워 주신다. 나는 농사며 컴 강의며 이런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쓰는데 옥천을 가게 되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못하고 하루 해가 넘어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머님하고 같이 갈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옥천가면 아버님은 집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밖에서 차를 주차해 놓고 기다리신다. 사흘째 되는 날은 보살이 아버님 오셨는가 묻는다. 오셨는데 안 들어 오실라는가 밖에서 기다리신다네요 하니, 아니라 오늘쯤은 올라 오실거라고 예상은 놓네.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지. 문 밖에(아파트에 보살이 산다) 나가면서 8층 아래를 내려다보며 전화를 하니 아버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는게 아닌가. 전화는 전화대로 받으시고. 전화 목소리와 직접 목소리가 같이 듣긴다.
"야이, 내가 8층까지 올라 왔는데 집이 어데고"
"아..잠깐만요 아버님 제가 엘리베이터쪽으로 갈게요"
거참 그런거 보면 신통하지. 완강하게 우리랑 같이 올라오길 거부하던 아버님이 보살 말 떨어지기 무섭게 8층으로 자진해서 올라 오시다니.
지압을 받는데 아파서 어머님은 깜짝깜짝 놀래신다. 나는 참 그래. 그걸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늘 어른들 모시고 다니면 내 경계가 어딘가 햇갈려. 돌아서서 집에 가면 그런 영계의 일들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사는데, 보살 집이나 영동 할아버지 집에 가면 또 안 믿는 것도 아니여서 그 경계 안쪽으로 다 발을 슬그머니 들여다 놓고는 살펴 보는겨.
그런 이야기는 다 거두 절미하고. 닷새째 가는 날이였네.
시고모님도 영동 할아버지를 잘 알지, 벌써 안지가 삼십년이 넘었으니까.
고모님도 어깨죽지와 등때기가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우리가 옥천까지 간다하니까 같이 타고 가자며 연락이 왔다. 그래서 네쨋날을 고모님과 같이 가니까 보살이 하는 말이.
고모님은 내가 오지말라 할 때까지 와서 치료받아야 혀.하는거다
그래 오일째 되는 날도 고모님 오시라해서 11시쯤 출발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고모님이 아버님보다 조금 늦게 들어 오셧다. 아버님이 집에 와서 고모님이 없으니까 막 신경질을 내시면서 사람을 이렇게 바락고 있게 만들면 어쩌냐며 이야기를 하시는거다. 고만 어머님이 안절부절이다. 고모님이 얼마 안 있어서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 오시는데 오시자마자 차에 시동을 걸더니 출발을 하려고 한다.
어머님은 잘 걷지를 못하니 집에서 계단내려 가자면 조금 시간이 걸리잖여. 그런다고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뻔히 쳐다만 보고 계신다. 어이구 아버님이시지만 참말로 만정이 떨어지는구만.
내가 얼른 나가서 부축해 차에 타시고, 대문을 잠그고 옥천을 가는데 얼마나 속력을 내서 밟으시는지 차에 앉은 우리가 불안하다. 불안해서 암말도 안 하고 옥천까지 갔는데, 아뿔사 내가 간다고 전화를 하지 않고 출발했더니 보살이 어딜 가고 없다.
겨우 수소문해서 통화를 하시 한시간 반이나 기다려야지 옥천에 도착을 한다는 것이다.
그 때시간이 열두시 십오분쯤 되었다. 아,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우리 어데가서 점심이나 먹고 오자..이러면 좀 좋은가. 꼬박 두 시간여를 기다린다. 인상을 팍 구겨설랑은.
나는 고만 실쩌기 차에서 내려 아파트 반대편으로 실실 걸어와 어린이 놀이터가 있기에 거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배가 고프다. 그러나 나도 오기가 나서 암말도 안 했다.
두시나 가까이 되어서 보살이 도착하고 우리는 올라가 지압을 받고 내려왔는데 어머님 치료 받으시는 동안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아주 천둥치는 소리로 울렸다.
지압받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으니 새로 앉힌 부처님한테 절을 하고 불전을 놓고는 얼른 내려왔다. 아버님이 혼자 기다리시니 어머님은 마음이 바쁘신게다. 내려 와서는 차에 타자마자 냅다 달려서 황간 집까지 왔다. 마음이 급하니 신호등이 바뀔 때 급제동을 몇 번이나 건다. 앞좌석에 앉았다가 나는 몇 번이고 놀란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 어이구....참말로 이녀르 집구석은 집 아니면 밥 먹을 데가 없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렇게 다녀 온 이후로 어머님은 더욱 식사를 못하신다. 어머님이 잘 안 드시니 아버님은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권하다가 무엇이든 도리질을 하니까 부애가 나시는가 저녁을 조금 밖에 안 드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신다. 고스방이 마침 들어와서 저녁을 조금 늦게 먹기 시작해서 아버님 어머님 방으로 들어가시고 고스방하고 내하고 둘 만 남어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실쩌기 그 상황을 이야기 한다.
"어머님 식사 못하시는거 아래께 옥천갈 때 아버님이 하도 부애를 내시고 해서 속을 끓여 더 못드시는거라고"
"아버지가 왜?"
내가 자초지종 그날 있었던 상황을 이야기 하니까 가만히 있는다. 내 하는 말이
"당신은 나중에 아버님 처럼 그러지 마"
"어째야 하는데..."
"내가 아파서 뭣이 먹고 싶다고 하면 천리만리라도 델고 가서 사 멕여!"
"나도 아버지 닮은 아들인걸?"
"그러기만 해봐"
"아이, 닮아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여. 그 피가 어디가냐?"
"진짜 그러기만 해봐. 내 두 말 않고 도치(도끼) 가지고 와서 자동차 문짝을 찍어 버릴팅께!"
"어이구 저누무 여편네 나 보다 더 독해여"
"독한 줄 알면 알아서 모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