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낮술 한 잔.

황금횃대 2007. 6. 27. 08:38

어제 시동생이랑 서울에 있는 병원 다녀왔세요

낼모레면 나이 오십 되는 시동생도 고스방 눈에는 여덟살 아이입니다.

고속버스타고 전철 갈아 타는 것도 아니고 3호선 타면

언제나 앉을 자리까지 즐비한 그걸타고 열 정거장도 가기 전에 내려

계단 올라가면 병원 셔틀버스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고 얘길해도

고스방 눈과 마음엔 제 동생이 여덟살 아이입니다.

포도밭 일이 급해서 혼자 동당거리는데 고스방은 표를 끊어 와서

동생 집까지 아침에 태우러 갑니다.

그리고 고속버스 타기 위해 올라가는 계단 젤 가까운데 내려주고 갑니다.

잘 다녀오라고..

 

저번에 응급실에서 퇴원하면서 미리 지정된 교수님에게 예약진료 신청을 해놓고 와야하는데

그냥 덜렁 왔네요. 그래서 병원 가기 전날 혹시나 싶어 내가 물어보니까 예약을 안 해놓고 왔데요

포도밭에서 병원 전화 번호 물어서 땅바닥에 번호 받아 적어가며 예약 신청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소화기내과 담당 의사샘은 못 보고 일반외과로 가서 진료를 했네요

진료 자료들이 컴퓨터에 있으니까 일반외과 샘이 봐도 별 무리는 없었고, 약 처방도 응급실 퇴원

할 때 약을 그대로 처방 받으면 되니까 괜찮았는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고스방이 동생을 그렇게

봐서 그런지 나 역시도 저절로 몸이 고스방 처럼 움직이는거야요

진료 신청하는 것도 그렇고 시동생 델고 다니면서 저기 가서 혈압 체크 받으세요, 이리와서 기다리세요

진료비 계산하는 것도 밥값 계산도, 돌아 올 때 차표 끊는 것도 다 내가 합니다.

할 때는 그렇게 해 놓구선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은근히 화가 나요

 

아무리 환자로 간다지만 이런 경우가 어디있는가 싶어서. ㅎㅎㅎ

 

병원 진료 마치고 나오는데 삼촌(시동생) 친구가 왔어요

저번에 퇴원을 할 때도 와서 도와주던 삼촌 친구였는데, 서울 생활이 얼마나 바쁜지 나는 가끔 와봐도

기가 질릴 정도인데 시동생이 고향 친구라고, 그라고 아프다고 하니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 왔습니다.

털털하게 생겨서 이야기도 잘 하더만요. 점심을 먹었다고 해도 기어이 우리 둘을 택시에 태우고는 논현동 고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우생등심이라나..그걸 사줘요.

우리야 소는 길러 봤지만 한우 생등심이 그렇게 비싼지 어데 사 먹어봤어야 하는 말이지요.

일부러 논현동까지 간 이유는 그 식당의 건물 주인이 삼촌친구랑 업무상 잘 아는 관계인가봐요

그 건물 주인을 부러 불러서 좋은 고기를 달라고 주방실장을 불러서 부탁을 하더만요

그 삼촌 친구는 천엽하고 간하고 안주해서 술을 한 잔하고, 울 시동생은 뭣이는 매매 익혀 먹어야하니까

쇠고기도 한참을 익혀서 시동생 앞으로 갖다 주면서 많이 먹으라고 얘길해요

그러면서 날보고 형수님,형수님 하면서 얼마나 살갑게 얘기하며 술을 한 잔 따뤄 주어서

그 삼촌친구랑 나랑 한 잔씩 에어컨 빵빵한 식당에서 낮술을 마십니다.

옛날 같이 자란 친구 이니까 자연 옛날 이야기 나오지요

울 시동생은 별 말없이 그냥 웃기만 하고 고기를 먹어요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먹는다는게 소주를 다섯잔이나 먹었네

소주가 얼마나 시원하게 냉장이 되었던지..오랜만에 먹는 술이라 잘 넘어 갑디다.

원래 농사일 하면서 목이 칼칼할 때 술 한잔 하고 풋고추 된장에 찍어 안주 하면 입이 개운하고

그늘 아래 조금 퍼대지고 앉았다 일어나 일하면 없던 힘도 솟는 법인데, 나는 그걸 못해요.

일 하면서는 절대 술을 안 먹어요. 농주 한 사발도 안 하는구만.

삼촌 친구가 시동생 보고,

"야, 형수님한테 술 한잔 따뤄 드려라. 이렇게 맨날 니 따라 댕긴다고 고생하시는데.."하며 웃으며

술병을 건네도 딱 도리질을 하면서 시동생은 외면을 하고 안 해요.

시동생이 나보다 세살 많지요. 그래서 평상시 나보고 형수 소리도 잘 안 해요

그냥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지.

첨에 시동생이나 나나 딱 못을 박아야하는데, 그걸 못했어요

그래도 울 시동생이 못땠거나 심성이 고약해서 그런게 아니구 쑥쓰럽고 그래서 고만 미적거리다

굳어버린 습관이라 나도 암말 안해요. 그라고 별로 신경도 안 쓰고.

그런데 어제 술 한 잔 주라고 삼촌 친구가 두 번이나 병을 쥐어줬는데도 그걸 마다하니.

속으로 생각했죠. 어이구...저런 오지랖으로 어떻게 살아왔나. 내것 없으면 굶어 죽을 판이네. ㅎㅎ

 

막차 타고 황간 도착하니 아버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또 나오셨네요

아버님 보시기에도 막내 삼촌은 아직 여덟살인가봐요.

덩치는 산 만한데.... 그 산 만한 덩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막내, 막내, 막내...입니다.

 

고속버스 올라타자마자 잠들 준비해서 톨게이트 미처 빠져나오기 전에 잠들었나봐요

그걸 못 봤으니까. 술 기운에 한숨 가뿐하게 자고 일어나니 신탄진까지 왔네...버스가.

또 속으로 생각키를...고속버스 탈 때 괜히 지루하게 타고 가지 말고 어데 근처 선술집에서 소주 2/3병만

들이키면 그냥 잠들어서 편하게 오겠구만....했네요.

 

장마 와중에 오늘은 햇살이 반짝 나서, 빨래 얼릉 널고는 밭으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