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종이여편네와 머슴
올해로 결혼 16년째인데 살다보면 제 성격이 나오게 마련이다.
처음에야 서툰 결혼생활에 시부모님까지 같이 사니 딱히 억압은
없었어도
심적으로 내가 알아서 기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넘기고 살다보니, 호랭이 같던
신랑은 점점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새색시 고웁던 여편네는 이제 호랭이로 변해간다.
신랑이 뭐라 그러면 그저 두 눈에
눈물만 뚝, 뚝, 흘리며 입 밖에 나오는 말들을
눌러 참는 시절은 이제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스방 한 마디에 나는 외로 꼬인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몇 섬씩 주워섬기니 이 또한 시절이 내게 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즈음 나는 동네 일이나
면사무소, 아니면 학교, 농가주부...뭐 이런 모임과 단체의 일로
사흘이 멀다하고 외출이 잦은데, 시어머님께도 심히 송구한 일이고
고스방한테도 괜히
눈치가 보인다.
아이들이야 이제 내 위치(?)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아무렇지 않게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는데
맨날 주리끼고 필요할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여편네가 없다는 사실에 고스방은 좀 힘들어
하고, 어머님
역시 뭐라고 말씀은 아니하셔도 가끔은 새초롬한 눈빛을 짓고 계시니 그 두사람이
나의 부재에 제일 신경이 쓰이는 갑다.
오늘도 아침에 다림질을 하다가 스팀다리미에 부을 물을 좀 떠다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하니
물 한 컵 떠다주면서
하는 말이..."여깄어 기름종이여편네야"이런다.
와이셔츠를 다리다 말고 쳐다보며 기름종이여편네가 뭐냐고 물어보려다 생각하니
"유지여편네"란 말뜻이다.
자기는 평생 돈만 벌지 어디 놀러를 가나 딴 짓을 하나 그러니 머슴의 처지와 다를게 뭐냐고 한다. 그에
반해서 상순이는 요즘 시절이 좋아 걸핏하며 선진지견학이네, 무슨 대회네 하면서 뻔질나게 밖으로 나가니, 그야말로 기름종이 여편네지 뭐야 한다.
허기사 가만히 집에 있어도 나를 필요로 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니 그런 기준으로 보면 나도 유지가 맞네.
내가 뭐
진짜 유지라서 유지라고 하겠는가. 응근히 비꽈서 그리 말하는거겟찌.
그나저나 고스방, 지름종이 여편네 잘 델꼬
살어... 불 붙이면 맨종이보다 지름종이가 더 활활 타잖여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