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어렵게 장만한 바바리코트가 녹슬지 않게 걸치고 나가 싸돌아 댕길 수 있는 계절이 왔다
그러나 염병할.. 휘날릴 코트 자락이 있슴 뭐해 무릎이 절딴났는걸.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 올 때 더 찔그덕 거린다. 연골연화증이란다.
경주에 사는 만년 백수친구가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느냐고
잘 지내기는 뭘 잘 지내. 오늘 낮에 서방이 점심 먹으로 왔는데 애들 앞으로 이체되어 빠져나간
학교 경비 이야기하며 그걸 좀 달라고 하니 나보다 더 죽는 소릴하네.
그래 내가 그랬지, 그렇게 사는기 힘들면 고만 둘다 죽었삐자.
아, 차마 못할 말을 흘려 놓고는 서글퍼서...서글퍼서 자꾸 어깨에 기운이 빠진다
그래서 슬리빠 끌고 나가 진흥상회가서 문종우 세 장 사왔다. 천팔백원이래.
길다란 문종우 석 장을 반으로 접어 침을 묻혀 자르지
접어 접어 긴 종우 한 장을 편지지만하게 자르면 모두 열 두장으로 잘라져
그걸 책상 우에 펴놓고 달력을 만들고 편지를 쓰네
시름이 저 하얀 백지의 섬유질 속에 서캐처럼 숨어갈까바 화려한 꽃을 붙이고
씽씽한 초록,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인디고블루의 줄기를 그리며
제발....신이 내린 내 명까지는 살다가 죽어야지...
자슥놈은 옆에서 잘 살아 볼라꼬 저렇게 눙깔이 빠지게 공부를 하는데
이몸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간에 저누무 알맹이들 뒷바라지 해야지..
머리의 온도가 올라가자 더불어 가슴도 데워진다.
에혀...이거라도 만들며 사는데 위안을 받자.
시월이 시작되었다네 그것도 초하루.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래, 늙은 이용도 나와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십수년전 그 노래를 아직도 불러재끼고 있잖니...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