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글쓰기
글이란걸 써 볼라치면 어떨 때는 머리가 문장을 생각해 내는 것보다 손가락이 먼저 알아서 척척 자음 모음을 맞춰주기 때문에 참 수월케 쓸 때가 있다. 반면, 그렇지 않고 이걸 쓸까, 저걸 쓸까 땀작거리다보면 머리도 뒤엉기고 손가락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어버버버 거린다.
가끔 나도 지난 날 내가 쓴 글을 읽어 볼 때가 있다. 잘 써놨다구 읽는게 아니구 사람 사는 살이라는게 맹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것이라, 그 반복을 되풀이 하면서도 어떨 땐 보석바 속에 박힌 얼음 알갱이처럼 생각이 반짝반짝 빛날 때가 있고, 또 그렇지 않을 때는 흐리멍텅하니 문장이 흐릴 때도 있다. 되새김해봐야 신물 밖에 더 올라 올게 없는 인생이래도 가끔은 건빵 속에 별사탕처럼 달달한 한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이 죽통 속에 처박힌 몰골 사나운 꼴이라도 그 별사탕이 달았던 때의 침이 츠르릅 흘러 쓴 입 안이 잠시 행복해 진다. 지난 날의 기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건빵 속의 별사탕!
그래서 어지간하면 종이값도 안 들고 볼펜 잉크 닳을 일도 없는 이 블로그에다 일상을 주끼대는데 그것도 내 마음이 조금 편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잔뜩 속에는 할 말과 못할 말, 해서 안될 말과 꼭 해야할 말들이 이스트 넣은 밀가루반죽처럼 부풀었는데도 그것을 찬찬히 써 놓지 못하고 흘려 버린다. 훗날 쓴 입을 가셔줄 별사탕을 저축 못한 셈이다.
오전에는 어머님 모시고 김천병원에 가서 기본 검사 받으시고 결과 보고 집에 오니 세시다. 김밥 천냥 집에서 김밥 한 줄에 냄비 우동 한 그릇 먹고 황간 도착하자 바로 컴퓨터 가르키러 가서 한시간 떠들다 집에와서 저녁 준비, 주문 받은 포도즙 발송. 저녁 차려 드리고 일곱시 또 강의 한 시간...집에 와서 늦은 내 저녁밥을 한 상 차려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먹으며 오랜만에 애인과 통화를 한다. 아삭고추 된장에 찍어 먹는 소리, 콩나물 씹는 소리, 삼치조림 떼 먹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몇 백리 밖 애인의 귀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어이구...이런 결례를.
엑셀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이번엔 돈 내고 강의를 듣는다. 참내...여전히 햇갈리고 어렵다. 워드를 가르치면 아지매, 아저씨들이 몹시 햇갈려한다. 내가 엑셀을 들어보니 금방 들었던 걸 또 잊어 먹는다. 사람의 기억이란 거기서 거기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하루가 차분차분 저문다. 내가 사는 반대편 지구에서는 차근차근 하루가 시작되겠지. 거봐 에니콜 에서는 철수 영희 바둑이..이렇게 세 가지의 양태로 생을 구분하지만 나는 그냥 차분차분 저무는 인생과 차근차근 시작되는 인생, 이렇게 두 가지로 밖에 구분이 안 되는 걸. 그걸 미분하여 살면 또 개개인의 인생이 되겠지만. 쩝.
참,참, 그리고 병원에서 검사 결과 기다리는 동안 마트에 가서 머그컵 두 개를 샀다. 하나에 삼천오백원씩이니 참 비싸다. 그래도 포도농사지어 받은 돈으로 내껄 하나 장만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머그컵을 거금 들여 샀다. 이천원짜리를 들었다놨다 열번은 더 했다. 그러다 결국 삼천오백원짜리로 결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오돌도돌 양각된 느낌도 좋고. 저녁을 먹을 때 그 컵에다 물을 따뤄 마셨다. 옛날 제천 사는 남자 친구가 식당 가서 밥 먹고 그 식당에서 파는 도자기 물컵을 하나 선물로 사주었는데 그걸 서울 시누형님이 깨고 나서는 컵에 대해 나도 모르는 집착이 생겼다. 작은 트라우마였을 수도 있으리라. (그게 뭔 트라우마씩이나? 하고 반문하시는 그대... 다 말 못하는 속사정이 있음이야 ㅎㅎㅎㅎ)
그리고 우체통에 반가운 청첩장이 와 있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