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점심까지는 어째어째 냉장고 바닥 긁어서 해 먹었는데, 파도 떨어지고 풋고추도 하나도 없고, 맨날 잘 먹지도 않는 반찬만 상 우에 오르락내리락.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 눈보라를 뚫고 장 보러 갔어요.
내 한몸이면 그냥 김치 쫘악 찢어서 입아구리가 터지도록 먹으면 되는데 시부모님, 스방, 아이들 때문에 안 되요. 눈이 녹기는 해도 하루죙일 몰아치며 내립니다. 해가 떠도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불면 바람타고 윙윙 소릴 내면 몰아쳐요. 장 까지 걸어가는데 귀때기가 시립니다. 그래도 식구들 먹을거 사 와야 하는 걸음이라 되돌리지도 못하고 가요.
이것저것 사서 들고, 껴안고 오니 대문 우체통에 연하장이 두 통 와 있습니다.
금산자활센타의 조정근신부님과 김재성씨가 보냈어요.
김재성씨는 2002년 아는 언니 신인동시조상 받을 때 서울가서 축하 해 주느라고 다 같이 모였다가 그 때 본 아자씨입니다. 사대문 안에서 출생했다며 새악씨같은 심성을 가졌어요.
그 처가집이 강화에서 포도농사를 지어요. 매번 포도철이 돌아오면 포도일은 얼마만큼 했는지, 농사는 잘 되었는지, 포도는 비싼값에 잘 팔아묵었는지 사람 안부보다 포도 안부를 늘 물어 옵니다. 허기사 농사꾼 안부라는게 농사 안부와 일치하니까 영 잘못된 안부는 아닙니다.
얼굴 여러번 봐도 단절된 인연이 부지기수인데, 행사 때 얼굴 한번 본 것 뿐인데 가끔 노을이 이쁘다고, 하늘빛이 아름답다고 문청시절 문자로 안부를 물어옵니다. 그래서 오래오래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목도리 두른 것 휙 땡겨서 풀어놓고 봉투를 뜯어요
척 보니 토목 내지는 설계 글씨체를 닮았지요? 도면글씨체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내가 다른 글씨체는 몰라도 도면 글씨체는 세월에 변형이 왔어도 잘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서울 사는 김재성씨가 횃대는 저러저러 하다고 연말에 맘묵고 써 보냈네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ㅎㅎ
내년에도 나는 여전히 웃고,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잔머리를 굴릴게구, 고스방 눈치 살살 보면서 부지리 바깥으로 내돌겁니다. 그렇게 살면서 짬짬히, 혹은 설핏 나만 느끼는 색깔들을 여러분께 이야기 해 드릴게요. 잘 쓰고 못 쓰고 이런 문제가 아님을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 잘 아실겁니다. 사람 살아가는게 뭐 다 그렇지 하며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런.
자,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구요 보고 싶으신 분들은 연락하십시요 0114304388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