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8. 1. 2. 09:44

어제 아침 새해에는 제 마음 지가 잘 다스리고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못에 걸 때 흔들리던 그 다짐이 미처 자리도 잡기 전에 저녁 먹으로 들어 온 고스방이 부애를 돋군다.

 

얼마전에 아버님 드린다고 길에서 파는 패딩바지를 한벌 사 왔는데, 울 아버님은 또 먼 고집이 그리 세신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얼마든지 입는데 말라꼬 새 바지를 사왔냐고 기어이 그 바지를 물리치신다. 할 수 없이 산 것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고서방이 입었다. 그 바지에는 웨빙끈으로 된 허접한 벨트가 달려 있었다. 새옷을 갈아 입던 고스방, 허접한따나 벨트가 있으니 지금껏 끼고 다니던 벨트는 풀어서 옷걸이에 걸어 놓았겠다. 지난 달 28인가 아들놈이 여태 쓰던 방은 산만해서 공부가 안 되니까 우리가 쓰던 방과 저희들이 쓰던 방을 바꾸겠다면 한바탕 집구석을 홀랑 뒤집어 놓았다. 장롱이며 책상, 거기다 자잘구리한 박스며 수납장들이 모두 자리바꿈을 하였으니, 그 속에 들어 앉은 옷가지며 온갓 잡동사니야 말할게 있냐. 어제 저녁 밥 먹으러 들어 오는 고스방 품새가 좀 이상해. 엉거주춤 바지춤을 붙들고 한 손에는 웨빙끈을 붙잡고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벨트가 고장 났으니 저번에 매던 걸 찾아 오라는거지.

 

방 옮기는 날도 종일 이 물건 저 물건 들었다놨다하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 아홉시가 다 되서야 겨우 정리를 했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딸도 잃어 버렷던 사진을 찾아서 좋다고 했는데 정리 하는새 어디에 두었는지 지금도 못찾고 있다. 별로 거들지도 않은 딸도 저렇게 정신이 없는데, 현장 깊숙히 투입되서 수백가지나 되는 물건을 들었다놨다 한 내가 그녀르 허리띠 어디 넣어 놨는지 어떻게 기억을 하냔말이지. 물건을 치우면서도 고스방 물건은 단디 놓아 둔다고 염두에 두긴했어도 너무 여물게 놓아 둔 것조차도 너무 여물어서 기억을 못한다는. 어흑.

 

저녁을 후다닥 먹어치운 고스방, 빨리 허리끈 찾아내라고 예의 그 커다란 눈을 희번득하면서 우릴 협박한다. 공부를 하던 아들놈도 바짝 긴장이 되어서(제가 방 바꾸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에) 얼른 내방으로 건나와 장롱이며 서랍이며, 바리바리 싸놓은 보자기 꾸러미며 다 풀어서 배암길이만한 허리끈을 찾았다. 다시 한번 방은 뒤죽박죽이 되고, 자기는 손갑육갑 까딱도 안하면서 괌만 지르고 있다

 

"아니, 그게 바늘만해, 실꾸리만해. 그 큰 것을 아무도 못 봤다는게 말이나 돼!(버럭)"

이렇게 되면 우리도 할 말 있다.

"(무조건)못 봤다!"이다.

기억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무조건 <모른다!>이거나 <못봤다!>로 일관.

이런 습관은 결국 고스방 때문에 생긴 것이다. 무엇을 찾든, 물어보든 간에 식구들에게 협박조로 일관하니까 우리는 무조건 <오...나는 몰라요>로 대답하게 된다. 그러면 그는 길길이 날뛰며 우리에게 책임 추궁을 한다. 정신을 엇따두고 사는지. 어마이나 애새끼들이나 정신머리가 똑 같다는 둥, 또 어디 둘둘 말아서 불에 싸질렀지..하여간 들으면 반성이 되기는 커녕 반감에 저항정신만 불태우게하는 언어조합을 줄줄히 뱉어내고 있다. 못 찾으면 낳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아니 낳는것도 그저 되나? 용 쓸 시간은 줘야하잖아. 아주 사람 다그치는데 이력이 났다.

 

결국 병조가 옛날에 쓰던 허리끈을 하나 찾아서 주니 그걸 임시로 매고 나갔다. 고스방은 나갔어도 허리끈 찾는 것은 계속된다. 찾다찾다 기운이 빠져 털퍼덕 주저 앉아 혹시나 싶어 쇼핑백 종이가방 모아 놓은 곳을 흐적거리니 그 속에서 허리끈이 나왔다. "나왔다 병조야! 이거야 이거." 병조에게 허리끈을 보여주니 아들놈은 허리끈 꼴도 보기 싫으니 얼른 바깥에 갖고 나가라고 한다. 그러나 돌아가신 할애비가 다시 와도 이것보다 더 반가울까.

 

이 허리끈으로 말하자면,

가을 어느날, 고스방이 점심을 먹으로 오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왜 기분 좋은 일 있어요? 하고 물으니 허리끈을 보여주며 닥스란다. 척보니 뽑기통에서 뽑은 뽕닥스다.

"에이, 짝퉁이잖아"

"내가 이걸 뽑으니까 시내버스 기사가 <야~~ 형님, 좋은거 뽑으셨네 닥스 허리끈이구만>그러던걸"

"모양만 닥스면 모해 뽕 닥스구만"

"뽕닥스면 어때 모양만 닥스면 되지"(이렇게 부부가 안 맞다 ㅎㅎ)

 

그놈의 뽕닥스허리끈이 해필이면 초하룻날 사람 부애를 이렇게 돋아 놓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집구석 홀딱 뒤집어놓으며 찾은 뽕닥스를, 죽은 할애비보다 더 반가운 뽕닥스를 마루로 들고 나와서는 맨날 고스방이 앉아 티비보는 쇼파 위에다 패대기를 쳤다. 뽕닥스는 패대기치던 말던 몇번 꿈틀거리더니 제 자리를 찾아 얌전히 앉아 있다. 아침의 다짐을 새기자면  그거 한번 패대기 치는걸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야하는데...에잉 제기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