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5. 1. 29. 22:44

 

 

울딸 책상 위에 볼펜이 다섯 자루 들어 있는 필통이 있어요

 

오우! 색색의 볼펜, 이 깔끔하게 써지는 촉감.

 

그래서 올해 새로 시작한 일기장에 일기도 이 볼펜으로 신나게 쓰고 있어요

 

편지도 이것으로, 가계부 목록도 이 볼펜으로

 

글씨 쓰는 일이 좋아서 심심하면 필사도 해 볼 참이에요

 

너무 두꺼운 책말고 좀 얇은 책을 골라서 공책에 써 보는 것입니다

 

옛날 초등학교 때 숙제 하던 생각이 날 거예요

 

국어책 24쪽에서 30쪽까지 써 오기

 

그 창의성 없는 숙제를 하느라고 연필심을 갈아가며 썼겠지요

 

손가락 사이에 땀도 삐질삐질 흘려가며

 

옛날 내 글씨가 어땠는지 몹시 궁금해요. 이사를 다니느라 부모님들은

 

내 일기장을 어디다 어떻게 버렸는지 기억도 안 하시겠지만

 

처마 밑 땅 그늘 지도록 공기 놀이를 하고, 성당의 밤나무 아래서 유엔기구를

 

외던 일들을 써 놓았고, 이태리 신부님의 제의복 위에 찰랑이든 홀의

 

모습을 어느 날 일기에 쓴 것도 기억이나요.

 

선생님께 혼난 이야기..그렇지 집합과 방정식을 따로 배우면서

 

숙제에 허덕이든 이야기, 그 붉게 피던 여름날의 칸나.

 

지금 생각하면 아카시아 꽃잎 떨어지는 풍경처럼 아득한 일이지만

 

좀 자세히 생각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섞어보네요.

 

그러면 좀 더 당신께 조잘조잘 이야기할게 많을텐데.

 

 

그냥.. 이렇게 앉아 쓰면서 내게 주어진 이 빡빡하고 옴짝 못하는

 

시간이 느슨해져서, 저렇게 달빛이 나뭇가지에 꽃등을 켜는 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마주보고 이야기나 실컷 했으면 좋겠네요.

 

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