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5. 2. 16. 19:53
종로 3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ㄱ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나 ㄱ의 목소리는 금방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한 목소리다. 후다닥 뛰어온 기색이 완연하게 수화기 저편에서 ㄱ의 숨소리까지 대답하는 음성 사이사이로 잡힌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세요. 날씨는 어때요?> 반음씩 ㄱ의 목소리는 올라 간다. 그러다 함빡 웃음이라도 터지는 날은 내 귀가 깜짝 놀라도록 옥타브씩 이동한다. 그 웃음 소리......

 

 

귀금속 전문 ㅇㅇ당 이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유리문의 양쪽에는 시계며 예물로 보이는 여러가지 금세공품과 보석들을 박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어서 오십시요> 종업원이 인사를 하며 무엇을 살 것인가 나를 파악하고 있다. 나는 다가서며 <귀걸이 좀 보여 주세요>한다. <이리로 오세요> 네모 반듯한 판대기를 우단으로 싼 진열통에 작은 귀걸이들이 조롱조롱 달려있다. ㄱ의 생일이 며칠 전이였는데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은가 물었더니 <달랑거리는 귀걸이>라고 얘기를 한다. 이것저것 곁눈으로 쳐다보는데 <누가 하실거예요?>하고 점원이 묻는다. 얼결에 <집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사모님 연세가....>하면서 종업원이 힐긋 나를 쳐다본다 그 순간 내 나이를 기억해낸다 쉰 넷...대답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점원은 물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작은 고리같은 것을 권한다. 아니다 저건 아니다. 분명 ㄱ은 달랑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이런 모양 말고...>말끝을 흐리며 나는 점원이 권한 것 옆에 것을 고른다. <이것은 외출용이고 나이 많으신 분이 하기엔 좀 그런..데>하며 내가 고른 것에 점원은 전문가적 견해를 내놓는다. <아차, 말을 잘 못했구나 누가 할 건가 물을 때 애인이라고 말할 걸>후회를 했지만 때는 늦었다. 나도 첨으로 이런 걸 사러 오니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차마 애인 줄 것이라 얘길 못하고 마누라를 팔았는데, 내 시선에서 이미 저들은 내 속셈을 눈치챘으리라. <흥! 마누라 좋아하시네>

 

 

아무려면 어떠랴. 저들은 내가 돈을 지불하고 귀금속 전문 ㅇㅇ당이라고 쓰여진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나를 잊을것이다. 마누라에게 줄것인가 애인에게 줄 것인가 그들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듯 나를 잊을 것이다. 앙증맞은 통에 반짝거리는 귀걸이를 포장한다. 돈을 지불하고 거리로 나온다. 세상은 내가 산 14k 귀걸이빛깔로 반짝인다. 발바닥 근처에서 튕겨 오르는 빗방울 조차도 금빛이다. ㄱ은 귀걸이를 귀에 매달고 옥타브와 옥타브를 오가며 웃을 것이다. 달랑거리는 귀걸이는 내 가슴의 늑골과 갈비뼈, 아니아니아니아니 내 몸의 뼈라는 뼈는 다 돌아다니며 짧고 긴 음표를 남기겠지. 아! 가슴이 뛴다. 역시, 이 나이에도 연애는 좋은 것이야.

 

 

-50을 넘긴 나이에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