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8. 2. 20. 20:59

명절 지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또 보름이라네 글쎄. 점점 부엌에 들어가기 싫어지는 나는 대보름이래도 그냥 맨밥에 먹던 반찬에 생선 조림이나 한가지 해서 먹으면 좋겠는데 그게 또 그럴 수가 없단 말시. 나 혼자 살면 모를까 그냥은 못 지나 가요. 아침절에는 강의 한 집 갔는데 탑골농원 아저씨네 갔지. 아저씨는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왔는데 구경할 땐 멀쩡하던 것이 집에 오니까 몸살이 나서 지금 고생중이시라고. 아주머니도 입이 부르텄다고 우유와 감귤, 그리고 한라봉을 내오면서 얘기하신다. 으흐흐흐. 왜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날까. <백수 과로사 한다는...>

 

우리집에도 그 말의 경계까지 간 사람이 하나 있네 딸래미. 시험 발표 나기 시작하고는 (뭐 엥근흐면 다 가는 대학이니까, 우리나라 참 대학 많다 ㅎㅎ) 그 때부터 놀기 바쁘다. 전학간 친구를 만나네, 외갓집에를 가네, 서울로 학교 가는 친구들이랑 이제 자주 볼 수 없으니 스키를 타러가네..보드를 타네. 가스나들이 몰려 다니면 이틀을 멀다하고 보따리를 싸서 놀러 댕기더니 입이 부르트고 눈밑에 다크써클이 생겼다. 어이구 잘났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엄마, 고 3 시절,한 달에 한 번 쉬면서 공부할 때도 안 생기던 다크써클에 입술이 멀쩡했는데 이거 뭐 노는데 왜 이런디야? 노는 것도 데근한가벼." "그래, 니 어디서 이런 말 못 들어봤냐? 백수 과로사 한다는." 깔깔깔 넘어가며 웃는다. 웃으며 맞어맞어하며 밖으로 나가는데 아들놈과 나는 마주보며 속닥속닥 한 마디한다. ......저렇게 웃으니 좋네. 옛날 아플 때 생각하면 머리 밑이 노오래지는데 그쟈, 대학이 대수냐 ㅎㅎ.......

 

점심을 차려 드리고 2시에 다시 황주동 아지매한테 컴 갈채주러 갔다가 한 시간 열라리 설명하고 나오니 목구멍이 텁텁하다. 농주 한 사람 벌컥벌컥 마셨으면 싶은 생각이 꿀떡이다. 저번에 서울 서교동 <문턱없는 밥상>집에서 마신 농주가 퍽이나 시원하고 맛있던데...

영동장까지 보름장을 보러가야하는데 그도저도 귀찮다. 마트에 들러 잡곡 봉다리 두 개 고르고 김이며 콩나물, 물오징어에 봄동이며 계란 한 판 동여맨 끄내끼를 들고는 바람 속을 걸어 간다.

 

바람 속으로 걸어 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 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홀로 지샌 기인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왼 손에는 가방과 이것저것 든 비닐봉다리, 오른 손에는 계란 한 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준비물-무거운 봉다리와 계란-을 들고 찬 바람 불어 머리카락이 눙깔을 찌르는 길을 걷자면 왜 아니 욕이 나오겠는가 그러나.

뜨거운 이름들....시어머님, 시아버님, 고스방, 고싱, 고병조...을 가슴에 두면 욕은 스멀스멀 기어들고 저렇게 노래가 나온다 아놔~~믿거나 말거나.

 

감자참치볶기, 손바닥만한 조기 댓마리 조림, 다래나물 무침, 시금치나물,  두부찌개, 김, 오징어파전, 나박김치에 봄동겉절이, 부럼이나 빠득빠득 깨물며 찰밥을 떠 먹으며, 부득부득 찰밥 속에 곶감을 넣으라고 우긴(나는 찰밥 속에 곶감 넣는거 억수로 싫어함) 고스방이나 꼬라보면서 ...보름, 대보름 달이 뜬다.

 

 

 

ps:졸라 우끼는 이야기 하나.

낮에 점심을 먹으로 고스방이 들어왔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날 불러서는 밥 한 주걱을 더 퍼 주라고 하네. 그래서 내가 얼른 밥통에 밥을 한 주걱 퍼서 고스방 밥그릇에 놓아 주고는 다시 조금 더 퍼서는 그릇에 놓으면서 <안 그래도 정없는데 정 있으라고 한 번 더 퍼 주야지>

말을 어찌나 정시럽게, 눈웃음 뚝뚝 떨어지게 하고 있는데 고만 너무 가식적인 정을 남발하느라 용을 썼는가  한참 말을 하는데 방귀가 뽀봉 나온다. 앗!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고스방 왈, "하이고 이핀네야 정이 솟기는커녕 있던 정도 뚜욱 떨어진다 아이고 냄새야. 머리털 다 빠지네"

에이씨!~~하필이면...쩝ㅡ.ㅡ;;

 

무안해서 얼른 방에 들어왔지만 생각할 수록 절묘한 그 타이밍이....우헤헤헤 정말 오랜만에 배꼽잡고 웃었스

팔짜에 없는 정은, 하나가 생기면  그나마 있던 정은 뒷문으로 빠져 나간다는 전설같은 이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