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뒤안 장독들이 오랜만에 목욕을 하였다
옹기 떡시루며 시집 올 때 가져온 양념단지며 고추장에 간장 단지들이 말갛게 세수를 하고
개인 눈으로 머리맡의 살구꽃 봉오리를 본다
"주인여편네가 얼마나 게을턴지...정월 장 담글 때 우릴 한번 씻어 줄줄 알았지 모니, 근데
이 여편네가 시침을 딱 떼고는 햇장 담는 저 단지만 싸악 씻어 주고는 우린 쳐다 보지도 않어
글쎄, 승질 같아서는 고만 나도 좀 씻겨다오 하며 큰 입을 열고 둥근 뱃통을 울려 고함을 지르
겠지만, 알다시피 저 여편네가 오즉이나 바뻐. 내가 한번 접었어. 저도 눙깔이 있는데 황사 뒤집
어쓰고 빗방울 뿌려 얼룩덜룩하면 안 씻어 주고 배기겠어?"
꽃봉오리와 오짓독이 열심히 나를 흉보는 소리에 귀가 간지럽다.
오랜만에 자두밭에 갔더니 고일꾼(철도레일 일하는 사람을 여기선 이렇게 부르더만)이 부치는
밭에 씀바귀가 하나가득이야. 어제 쑥 다듬으면서 엄니에게 씀바귀(여기 충청도 끄트머리 사투
리로는 지칭개나물이라고 하더만)가 많더라 했더니, 그거 삶아 우려서 먹으면 상긋하니 향기도
좋고 맛있는데 하기에 한 봉다리 뜯어서 왔지.
봄나물이 그렇듯, 삶으면 얼마나 이쁜 초록색인지.
눈으로 봐도 금방 붉은 핏톨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것 같지 않어?
씻어 놓은 오짓독 뚜껑을 열고 고추장 퍼서 새콤달콤매콤하게 무치면서 손으로 한오래기
집어 올려 입 딱 벌리고 먹는 맛, 그게 촌구석 사는 재미여.
지난 일요일 비를 타고 겨우 도착한 봄
변소간에 앉아 뚫린 창으로는 암만 봐야 보이지 않던 그들의 수집은 얼굴이 빠꼼 나왔다
옥상에 올라가서야 마주친 붉은 얼굴.
야~~~ 디게 반갑다
올해는 바람놈이 간지래더라도 적당히 웃어
간지랜다고 목젖이 터지도록 웃다간 또 죽는단 말여.
나는 살구가지 하나를 붙잡고 미련곰퉁이같은 짓 고만하고 오래 오래 피어 있으라고 부탁을
하건만, 꽃들은 속으로 그러겠지.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마, 우리가 웃다가 자지러져야 살구가
달린단다. 쪼뱅이 아지매야.
수십 년 지어오던 자두밭을 정리했다.
십 칠년전 돌아가신 아즈버님이 농고 다닐 때 분양 받아 짓기 시작한 자두 농사
더 이상 자두는 농사꾼의 주머니에 돈이 되지 않는 과일이다.
이제는 딸박(딸기밭)처럼 모기에 물리면서 자두를 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무 위에 올라가 잘 익어 분이 뽀얀 자두를 한 입에 덥석 깨물며 과즙을 줄줄 흘리던
그 맛도 더불어 못 보게 된다.
이제 감나무를 심는단다. 나는 이삼 년 뒤엔 곶감장사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