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귀농
매일 밭으로 간다
포도밭은 시동생에게 맡기고 매일매일, 어떨 땐 하루에 두 번씩도 간다
옥수수를 심고, 콩을 심고 들깨 모종을 한다.
매일 밭을 매도 지심은 매일 고스방의 수염처럼 돋아 난다
오늘은 낫으로 참깨골에 수북하게 올라 온 바랭이를 베다
낫을 최대한 밑동에다 들이대고 풀사역을 한다.
풀을 벨때마다 옛날 생각 난다.
결혼하고 첫 해, 지금은 포도밭이지만 새댁일 때는 그게 논이였다
하도 고논(물이 깊은 논)이여서 모 심을라고 로타리를 치다보면 경운기
대가리가 논 속에 빠져서 곤욕을 치뤘다. 다아~ 옛날 이야기다.
고논에 심은 벼도 잘 자라서 가을이면 나락을 베야하는데, 콤바인 갖다 대기전에
미리 물 빠지라고 벼 서너골을 미리 베어서 논둑에 얹어 놓고는 논둑 가에 물길을
좁은 폭으로 내 놓는다
그걸 하러 갔는데 나는 첨으로 낫질을 하는거라 엉덩이를 쑤욱 뒤로 빼고 나락을
손으로 움켜쥐고 낫질을 해대니 일이 진척이 없어. 고스방은 잘 해나가는데 나는
맹 뒤쳐져서 헉헉 거리기만 하고 허리 아프다고 징징 짤고 있으니 그 드러븐 성깔을
있는대로 드러내며 낫질을 왜 그리 못하냐고 괌을 질렀다.
내가 하는 걸 보더니 참말로 <한심>하게 낫질을 한다며 낫질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왼손으로 나락을 움켜쥐고 낫으로 베는게 아니고, 낫으로 나락을 확 휘어 감으면서
베 나가야지 힘이 덜들지. 그렇게 쌩잽이로 힘을 내서 낫질을 하면 일이 진척이 있냐
아무리 일 머리를 몰라도 그렇지. 어쩌구저쩌구.>
방법이야 알아도 그건 진짜 숙달된 다음에 나오는 자연스런 방법인데 낯선 낫질에
그 정도의 경지를 요구하는건 무리다. 근데도 그 배락같은 스방은 내게 그걸 요구한다
이제야 낫질 잘 하지. 나도 농사 짬밥 먹은지가 몇 년인데..그러나.
작년까지 자두나무가 있던 밭은 무얼 심어 놓고도 풀을 잘 매지 않아서 엉망이였다.
내가 밭에 발걸음을 전혀 하지 않았던거다. 겨우 심어 놓은 가지며 오이, 토마토 따다
먹기만 했지. 한 마디로 게으른 농사꾼이였던게다. 그렇게 게으르게 농사를 지으면서
다~아 사다 먹었다.
포도나 안 사먹었을까 정말 다 사다 먹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나는 달라졌다.
명박이가 대통령이 되고, 농산물 수입은 갈 수록 많아 질거구, 생각같아서는 소도 키워서
잡아 먹을까 궁리를 하지만 그건 너무 어렵고, 대신 고기를 적게 먹도록 하자, 물가는 자
꼬 올라가기만하고, 콩 한 톨, 기름 한 방울도 농사지어 먹도록 하자. 땅이 없으면 모를까
땅도 있고 호미도 있고, 머리맡에 놓고 죽을 지언정 씨앗도 있지 않는가.
씨를 뿌리고, 그것들이 싹을 내밀고, 소내기 한 줄기에 쑥쑥 제 키를 키워가며 속잎을
겹겹이 내 놓는걸 보면 이쁘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주근깨에 기미가 더덕더덕하지만, 팔뚝도 타서 옷을 벗어도 옷을
입은양 소매길이 가서는 경계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밭에 가서 밭을 곧잘 맨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진다.
바닥에 비닐 한 장 깔아놓고 퍼대지고 앉아서 야금야금 바랭이를 매서 흙을 탈탈 털고는
커다란 다라이에 풀을 담는다. 풀을 득득 긁어서 매는 방법도 있는데 바랭이는 얼마나
독한지 뿌리부분에 흙이 조금이라도 닿아 있으면 수분을 빨아 댕기고 땅에 다시 제 뿌리를
박아 놓는다. 지독하다. 그래서 모두 주워 담아서 길가 농로 풀숲에다 따라 갖다 버린다.
그러면 밭고랑은 빗자루로 씰은드키 깨끗하다.
그렇게 해놔도 다음 날 가보면 또 풀들이 뽀조록히 올라온다 미친다.
빈땅이 보이지 않게 무엇이든 심는다. 들깨를 제일 많이 심는다.
심어 놓으면 나중에 백배, 천배로 열매를 내놓으니까.
대신, 삭신은 골병이 든다 어이쿠..
그러나 나는 다시 귀농한 심정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런 내가 이쁘다. 아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