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염소 세 머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따로 팔려갈지도 모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에서 놉니다.
2월,상사화 잎싹만한 뿔을 맞대며
툭, 탁, 골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이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에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모임이 대구 동구문화회관 옆 식당에서 있단다.
그저께 논물 보고 굴다리 지나 오면서 회장의 전화를 받고는 "벨일 없으면 가꾸마"하였다
날이 꾸무리하다
간간, 빗방울 듣는데도 아버님은 얼음물을 챙겨 밭에 지심을 매러 가신다
아버님은 고스방이 사온 밭맬때 쓰는 방석을 다리에 끼우고 마악 낫질을 시작하여 두 오큼의 풀을 베어 냈을 때다
곧따라 나도 밭에 매운 고추 댓개 따러 갔다가 아버님과 같이 소나기를 만났다
너른 밭에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 쏴~아~아~~~하는 소리를 내며 옥수수대에 비가 들이친다
밭은 금방 빗소리로 가득 찼다.
맥고모자 눌러쓴 아버님의 얼굴에도 비가 들이치고 나는 급하게 오이골에 비료를 뿌리고 뇌리리한 고추골에도 듬성듬성 유안을 뿌렸다
가랑파도 말라 타들어가는데 그곳에도 마찬가지로 비료를 조금씩 쳤다.
오토바이 안장에는 벌써 흥건이 빗물로 젖었고, 아랑곳 하지 않고 올라 타서는 시동을 건다
부릉부릉부르르릉
밭머리로 올라가시던 아버님이 내쪽으로 돌아본다.
아버님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데 좁다란 농로길이 덜컹거릴 때마다 아버님은 내쪽으로 쏠린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아버님을 다시 뒤쪽으로 조금 물려 앉으시라고 한다.
이게 싫어서 밭에 가신 아버님을 오토바이로 태워오길 꺼려했다
아모 상관없는 그 접촉이 껄끄러워 아버님을 모시러 가지 않으면 어머님이 사사건건 내게 화를 냈다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까짓 오토바이 좀 몰고 가서 당신 태워오면 될건데 그걸 안 한다>하는 눈치이다.
그러기나말기나 나는 싫어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다.
비.는.철.철.오.고.
아버님은
우.산.도.없.고
멀쩡한 나는
오.토.바.이.를.타.고.있.고.
일도 못하고 옷만 홈빡 적셔왔다.
기차역에서 만난 고스방은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기차에 타서 마악 자리에 앉을 즈음 전화가 왔다
<야! 옷이 그게 뭐냐?">
더운데 칠부 바지에 티셔츠면 됐지 이게 뭐가 어때서
<람보옷 같잖아>
동기회, 식당에서 밥 한 그릇 먹는데 내가 치마에 스타킹에 구두 신을 일이 뭐가 있다고, 내가 이거 입고 간다고 아무도 머라 안해
<그건 니 생각이지>
그렇게 한 마디 쏘아붙인 고스방은 전화를 찌르르르 끊는다
내 생각이 우주의 전부지 뭐.
그런데 동기회는 가지 않았다
갑자기 기운이 추욱 빠지고 힘이 없어져서 그대로 친정집으로 갔다.
버스에 내려 집으로 걸어 가는 동안 선배님께 전화를 했다.
"요새 보니까 상순이는 완전 농사꾼 다 됐더구만.."
전화통화는 무던히 해 놓구선 괜히 마음이 턱 내려 앉는다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엄마는 계모임 가시고 아버지는 장염이라며 흰죽을 드신다.
"이제는 괘안아. 오늘도 병원 갔다와서 약 먹었어. 괘안아"
아버지는 한사코 개안타고 하신다.
엄마가 있으면 아버지랑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하는데 엄마가 없으니 나도 마루로 나온다
배구 경기를 보고, 점심을 먹고 그대로 늘어져 있다가 안경을 새로 만들어 끼고는 집으로 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찬란한 옷빛깔과 번쩍이는 구두장식을 업고 있는 하이얀 맨발에 멀미가 난다.
저녁 기차 덮개 위로 어둠이 내리고, 어둠의 빛깔을 닮은 내 팔뚝과 맨발이 열차의 계단을 내려온다
역전 마당에는 고스방이, 집 나가 삼년 만에 돌아 온 여편네 반기듯 좋아한다.
"람보바지 입고 가니까 친구들이 뭐라하드냐?"
즈그뜨리 뭐라 하긴 뭐라 해
거기 안 갔다는 얘기는 절대 안하지 내가 누구냐?
나는 사악한 여편네!
근데, 문인수의 시는 왠거냐구?
동대구역에서 841번 버스 타고 가는데 버스 광고시트지 옆에 저 시가 적혀있데
동백시인 문인수
언젠가 신문에서 그의 신작 시집 소식도 듣기는 했는데...
아득한 일, 시.... 한편 더..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