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데도 없는 엄마
아무 데도 없는 엄마
안미선/ <작은책> 편집위원
옆집 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와 있을 때면 문을 기웃거린다. 엄마는 딸내미가 살림하는 것이 눈에 안 차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쓸고 닦고 냉장고를 대청소한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국이 보글보글 끓고 밥하는 소리도 쉭쉭 들린다. 다른 할머니들은 나한테 엄마 고생시킨다고 눈을 흘기기도 하는데 옆집 할머니는 애처럼 마냥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좋겠다. 엄마 와서 좋겠다. " "우리 엄마 해. 나한테도 엄마 해"하시는 말씀이 이상하다. 자기한테 딸뻘인 우리 엄마 보고 엄마 하라고 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먹는 것도 잠자리도 보잘것없어서 누가 자기를 엄마처럼 돌봐 주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품에서 쉴 수 있는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할머니는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했다고 했다. 맏딸이었던 할머니는 딸린 동생 네 명을 데리고 살다가 열아홉엔가 동생들을 다 데리고 시집갔다. 그 조건 때문에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야 했는데 남자가 돈을 제대로 안 벌어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혼자 힘으로 가정을 꾸려 갔다고 했다. 남의 집에서 음식을 얻어와 그걸로 국 끓여 먹고 부르는 데 있으면 쉬지 않고 달려가 일해서 자기 자식들과 동생들을 모두 길러 내어 출가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평생 엄마로 한 몸뚱이 내주고 살았는데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일흔이 넘은 할머니는 엄마를 찾는다. 자기 엄마 해 달라고 우리 엄마를 붙잡고 조른다.
우리 엄마도 덩달아 외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외할머니가 못 배우고 다른 엄마들처럼 돈도 못 벌어 자기 공부도 못 시켜 줬다고 많이 원망하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가 해 준 음식이 먹고 싶고 "밥 한 끼 굶으면 평생 못 찾아 먹는다"고 잔소리하던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외할머니는 온종일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바느질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걸레질하고 자식이나 손자 앞에서 말 못하는 사람처럼 일만 했다. 우리가 자랄 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여동생은 임신하고 나서 문득 나보고 그런다.
"우리가 자랄 때 엄마는 없었던 거 같아. 엄마 기억이 안 나."
자식 수발에 평생을 바친 엄마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소리다. 사실 그랬다. 아빠는 언제나 공부하라고 다그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했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아무 말이 없었다. 교육에 대해서도,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에 대해서도 묻거나 대답해 주지 않았다. 동생은 버럭 외친다.
"우리가 속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는 성당에 가서 기도만 했어!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하느님한테 가서."
엄마는 그런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발언권도 없고 돈도 없고 애들 이렇게 키우는 게 아닌데 싶어도 아빠가 밀어 붙이는데 말도 안 통하고, 그러니까 '몸이 막 아팠다'고 했다. 퇴직한 아빠에게 엄마는 가끔 으르렁거린다.
"당신, 자식들 앞에서 나를 깔아뭉갰어, 옛날에도 그랬어."
내가 엄마를 변명하면 동생은 딱 잘라 말한다.
"난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어떻게?"
"아닌 것도 참고 넘어가고 말도 못하고, 그런 사람은 안 될 거야."
이제 만나면 부딪힌다. 엄마는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고 원망하고, 자식은 다른 엄마가 엄마보다 낫다고 공격한다. 다른 엄마가 있을까?
나도 결혼하고 나서 엄마가 그리웠다. 뭐든지 일일이 챙겨 주고 끼니를 굶을까 몸이 아플까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문득 그리웠다. 남 시중 들 일 많은 주부로 살다 보니 누가 돌봐 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나를 봐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젖먹이 때나 그랬을까, 나한테 잘해 주고 모든 걸 챙겨 주는 엄마는 머릿속에나 남아 있지 세상에는 없다. 지금 만나면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면서 손아귀에 쥐려 드는 엄마의 집착에 넌더리를 내거나, 나처럼 자기 세계에 갇혀 전업 주부 구실을 완벽하게 하려고 안간힘 쓰는 엄마의 노력에 안쓰러워지거나, 말끝마다 남의 평가와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싫을 때도 있다.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좋은 엄마란 것은 가랑이 찢어지도록 저 멀리 있다. 욱하며 애를 때리고 싶고, 횡하니 나가 버리고 싶고, 그냥 다 엎고 싶어도 꾹 참고 애면글면하면서 나는 어렴풋이 이해했다. 엄마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들끓는 감정을, 숨죽이는 욕망과 이름 없는 고통으로.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감내해야 되는 여자들의 좁은 선택을. 우리 모두가 바라는 완벽하고 착한 엄마는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하나둘씩 알게 된다.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엄마한테 맞고 컷다고, 아침에 눈을 떠서 캄캄해질 때까지 맞은 적도 있다고, 욕하고 때리는 엄마가 무서워 나중에 커서도 사람들 대하기가 어려웠다고. "그 때 왜 날 때렸어?" 물었더니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하던 엄마, 무엇인지 모르지만 외롭게 견뎌야 하는 형편이 힘겨워 아이에게 분풀이하고 고함을 지르던 엄마. 또 어떤 친구는 우리 엄마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우리 엄만 보통 엄마들과 달라. 자기 것만 챙기고 우리한테 계속 돈가져 가고, 아마 우리 엄마같이 이기적인 엄마는 세상에 없을 거야."
세상에 있는 엄마는 이렇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 스스로 생존하기에도 절박한 엄마가 있고, 배우지 못하고 돈도 없어 자식한테 늘 죄스러운 엄마가 있고, 엄마를 대물림받지 않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어마처럼 살아가는 엄마가 있고, 엄마가 평생 그리워 마음은 훌쩍이는 아이 그대로인 엄마가 있고, 분노와 무력감을 자식한테 매질로 풀어내는 엄마가 있고, 가족보다는 하느님, 부처님께 울며 매달리는 엄마가 있고, 형생 속을 파 주고 나서는 껍데기로 버려지는 엄마가 있고, 자신의 결핍을 보상하려고 자식을 움켜쥐고는 행복이라 강요하는 엄마가 있고, 자신이 엄마인지, 엄마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하루에도 수천 번 흔들리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내 이름과 엄마 이름 사이에서 갈팡질팔하고, 참아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망설이고, '이건 아니야' 와 '할 수 없지' 사이에서 눈을 감아 버리고, 또 한없이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새끼 거느린 어른이라는 다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세상의 엄마들은 엄마라는 기억을 머리에 이고 엄마를 부정하면서 또 평생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제각기 엄마의 길을 간다
*작은책 7월호가 왔다
가지 볶아 놓고, 애기고추 쪄서 가랑파 파릇파릇 넣어 무쳐놓고, 저녁을 차려서 어머님 아버님 드시라 해놓고 턱주가리 솟아 난 땀을 닦으며 방바닥에 퍼질고 앉아 책을 읽는다.
이 더운 여름,
아직도 노동의 현장에서는 해고의 피바람이 불고, 비정규직의 절규가 목아프게 지면에 가득 차 있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땀내음이 활자와 행간에 물씬 풍긴다.
아프다.
아프다.
자꾸 아프다.
아프고 답답하다
언제쯤 이 싸움들이 상생의 들판에서 평화로와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