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고혈압
박미라
모든 풋것들 그의 밭을 거치면 짭짤하게 절여지네
비린 것을 달다고 우기던 눈먼 욕정도
껍질만 시퍼렇던 어린 열매들도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자반이 되고 장아찌가 되네
다녀간 것들 많아 산호초처럼 우거진 소금길을
아무 때나 치마 걷어 내보이네
이봐, 펄펄 끓어, 손까지 끌어다 짚어 보이네
내게 좋은 것이 귀한 것이지 분명하게 절여 둬야 해
물기 많은 것들은 쉽게 상하거나 물크러지거든
눈물 많은 눈자위가 짓무르는 것만 봐도 분명하지
멍들지 마라, 상하지 마라
오늘도 소금 훌훌 뿌리네
너무 절이거나 말린 것들은
나중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
혹은 거둬야 할 물기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것일까
익숙해진다는 건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치명적인 독
붉은 핏줄 터뜨려 염분의 뿌리를 찾아보지만
무엇으로,
저 맹목의 사랑에 간 맞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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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얼 간 맞추느라고 고혈압일까
새삼 양파즙을 마시고
걷기운동을 한다고 운동화 뒷축을 끌어 당긴다.
짭고, 맵고, 얼크리하고 간간하게.
살림을 하자면 매번 저렇게 간을 맞춰야하는데
죽음이 살림의 목에 홀캐이를 옭아쥐었다
"약을 드셔야겠네요"
챠트를 들여다보며 간호사는 내게 간은 커녕 눈도 맞추지 않는데
나는 쫄아서 혈관이 수축한다
몸은 그래도, 삽짝을 나서 들판 사이를 끼고 도는 오래된 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다
막판 튼실한 열매를 위해서 숨가쁜 호흡으로 광합성을 하는 초록핏톨의 움직임이 겨웁고
그들의 뒷편에 낮으막히 자리하고는 아침 저녁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푸른 산이 아름답고
그 사이의 공기를 누르며 조용히 내려앉는 햇살이 부시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들의 움직임이 힘차고, 터놓은 물꼬로 왈왈 들어가는 논물도 기운차다
단지, 나 혼자만
핏줄이 졸창지간 터지는 건 아닐까
혈전이 심장의 길목에서 가로막기 놀이를 한판 한다면?
벼라별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끄덕끄덕 걷는데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쉬울라구
그러나 생각하면 할 수록
어디에 간 맞추려고 나는 짜디 짠 고혈압인가 싶어서
허허로운 눈길이 자꾸 뒤를 돌아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