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추석 연휴가 어지가히 끝나고 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 온 고스방이 방에서 딩굴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느그뜰은 보름달도 안 내다보고 참말로 정서가 메말랐다>며 한 소릴 한다. 그러기나 말기나 아이들은 현관 밖에 나오질 않고 티비만 쳐다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조카에게 줄 파우치를 하나 만드느라고 바느질에 코를 박고 있던 나는 고스방의 목소리에서 쓸쓸한 가을바람을 느낀다. 예전처럼 윽박지르거나 눈만 치떠도 벌벌 떨던 자슥놈들은 이제 대가리가 커서 아버지가 한 마디 하면 그걸 그냥 여사로 눙치며 저 하던 짓을 계속하니, 이젠 고스방도 그걸 깨달았는가 더 이상 닥달을 하지 않고 막차 내려 오는 손님 받는다며 나간다.
나는 손에 호두빵 두 개를 쥐고는 뒤따라 나간다.
그럼 나는 운동이나 하러 갈까?
싫지 않은 듯 고스방은 회관 마당에 세워 둔 차 문을 열고 나를 태워서 역으로 간다
역전 마당에는 막차를 타기 위한 손님들이 밝은 역사의 불빛 아래 보따리를 앞세우고 들락거린다.
기차는 도착하지 않았고, 그 차에 타고 온 식구들을 태우러 나온 차들과 고스방처럼 영업용 택시가
두어 대 주차를 하고는 손님을 기다린다.
나는 역전 마당을 몇 번이나 뺑빼이를 돌면서 슬금슬금 운동을 한다
낮기온과는 달리 저녁에는 바람도 설렁설렁 부는게 제법 가을 날씨같다.
달은 휘영청 밝아 낡은 오동나무 가지 끝에 걸렸고, 비를 걷어 내는 별들의 초롱한 눈빛이 내 눈에 가득하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막차가 도착해도 아모 손님도 없다. 역전 마당을 돌다가 실쩌기 눈치를 보니 아무도 고스방 차를 타는 사람이 없다. 다시 차 문을 열고는 "에고 다리야~"하며 털썩 주저 앉으니 고스방이 나를 치어다보다가 뭔가 반짝이는 것을 내민다. 앗~! 금목걸이닷!
결혼하고 고스방한테 받은 선물이래야 첫 생일 때 만년필 하고 서점에 내가 가서 고른 책 두 권. 그것 밖에 없었는데 이 무슨 금 목걸이래? 너무 놀래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스방을 쳐다보니 약간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에잉...자시 보니까 뽑기통에서 뽑은 금맥기 목걸이잖여.
고스방의 뽑기 행각은 내가 간간히 흘리는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직행 버스 기사가 부탁하거나 시내 버스 기사가 부탁하는 걸 대신 뽑아 주는 걸로 실력과 내공을 쌓고 있다가 추석이라고 며칠 전 새 물건이 뽑기통에 투입이 되었는데 거기에 이 금맥기 목걸이가 있었겠지.
순수파 아자씨 고스방은 저걸 남 먼저 뽑아 푼수 여편네 목에 걸어 주고 싶었겠다.
다른 기사들이 침 발라 도전 하기 전에 수천원 동전통에 집어 넣고 조마조마한 손힘의 조절로 목걸이를 뽑았을게다. 고스방의 손에서 내 손으로 금맥기 목걸이가 전해 지는 짧은 찰나에 나는 고스방의 일정을 비됴 보듯 읽는다.
그래도 목에 걸고는 빽밀러를 돌려서 눈을 11시 방향으로 치뜨고 금목걸이 걸린 내 목을 본다
반짝반짝` 진짜보다 더 반짝거리는 금맥기 목걸이. 나는 그걸 목에 걸고는 자랑스럽게 고스방 차에 타고 앉았다. 고맙지 아니한가. 반짝거리는게 모두 다 금은 아니라지만, 어떤건 금보다 더 반짝거리는 마음이 있어 심정이 뜨거워진다.
목걸이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앉았으니 어떤 아지매가 기차에서 졸았다며 김천에서 내려야 하는데 황간까지 왔다며 택시타고 다시 김천으로 간단다.
그 아지매를 태워 급하게 김천으로 가면서 고스방하고 시남시남 이야기하는데 낮에 아들과 한 얘기를 들려줬다.
"엄마, 엄마는 지금 사는 삶에 만족해? 더 좋게 살 마음 없어?"
"아니..엄마는 지금 만족하는데. 더 이상 좋은 것도 없고 짜드라 맛있는 것도 없고..."
"그럼 엄마, 내가 딱 한가지만 부탁 하겠는데 만족한 그 삶에 피자 한 판 먹고 싶다는 것만 추가 좀 하면 안 될끄나?"
고스방이 저 얘길 듣고는 낄낄 또 넘어간다.
그 아지매한테 받은 이만 오천원 차비로 피자 한 판 사서 온다.
"이래서 내가 느그떠리 안 이뻐"
"왜요?"
"어이고, 한 푼 벌면 주무이에 들어가기도 전에 톡, 털어서 알게먹으니까"
늦은 밤,
피자 여덟조각을 여섯식구가 배부르게 나눠 먹는다.
2002년 내가 서울 갔을 때 피자 한 판 사와 나눠먹고 그 후 육 년만에 해 보는 일이다.
ㅎㅎ
행복한 추석 연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