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경로당 민화투판 참가기

황금횃대 2005. 3. 23. 13:57
옥포동 천기하씨가 세상을 버리시었다
암투병으로 오랜 기간 고생을 하시었다. 올해로 일흔 하나시란다. 망자의 병이 깊어 들리는 말로는 호상이라고 하나 바지런하고 종종걸음 치던 할머니의 속마음은 시커멓게 탔으리라.
저녁을 먹고 일곱시에 동네 아낙들이 모두 모여 단체 문상을 갔다
작은 개울 사이로 동네가 갈라져 우리는 마산리고 거기는 옥포2구다.
옛부터 두 마을은 경계가 없이 들락이고 살았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행정구역에 연연하여
동네 행사도 갈라서 치뤄졌고 그러다봉께로 우리 동네 아낙들은 상가집 일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상가집에 가면 먼저 소주부터 한 잔 하는거랬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순전 제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인데, 거기에 재수 운운할 일도 없거늘, 상가집에서 뭐 그리 부정탈 일이 있는지 소주부터 한 잔 하란다.
소주 한 잔 단숨에 들이키고 소고기 국물을 떠먹는다. 호두알모양의 꿀떡에 인절미가 한 접시에 놓였고, 홍어회에 오징어무침회가 각각으로 나오고 동네 여편네들이 급히 부쳐냈을 전구지 찌짐이 납족납족 썰어져 한 접시 나왔다. 과일로 방울토마토와 배가 얌전히 깎아져 나오고 골목에는 조등이 청년회의 손길로 훤하게 걸렸다.

 

돼지고기 수육을 김치에 싸서 먹으며 동네 아지매들은 맛있다를 연발하였다. 옛날 병일이 아저씨 어무이 돌아 가셨을 때 그집 음식이 그렇게 맛있었다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살림에 장만한 상가집 음식이 너무 작아서 애가 달아 서로 먹으니 그렇게 맛있었지 다들 그 때를 추억했다. 마음 한구석 애닯은 심정이야 고요히 박아놓고, 맏상주에 맏며누리가 와서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얼씨구 며느리는 상중에도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평상시 사람 대하는 표정이 그러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슬픈 와중에도 동네 사람을 마주하니 상냥하니 웃는 얼굴이 되고 만 것이다.
옛날 고생한 이야기며, 차례를 받아놓은 몇몇집을 들먹거리다가 일어 난다.

 

열사흘 달님은 구름 가운데 희미한 낯빛을 내놓고 우릴 내려다 보고, 우리는 신발을 끌며 동네 회관으로 들어선다.
오랜만에 나도 회관에 들렀다. 며칠 전 동네 계를 하고 오다가 들러서 멋모르고 민화투판에 끼어 들었다가 오백원을 잃었다.

 

다섯명이 한 판으로 치는데, 화투장 넉장으로 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따 먹다보면 어떨 때는 넉장 화투패로 오십통을 하기도 하지만, 넉장이 다 나가도록 띠끝짜리도 한 장 못 갖다 놓아서 '무띠'라는 명목으로 돈을 내지 않기도 했으니.

 

우선 다섯명치는 경로당 민화투판 규칙을 함 보자.

옛날부터 전수받은 민화투의 기본 약은 비, 풍, 초 이렇게 세가지에다, 홍단, 청단, 초단, 이렇게 삼단이 있는데, 어이구 여긴 아니다, 이 기본 약에다가 똥약에 사약까지 더해서 제하는 점수도 그 둘은 사십을 제하니, 여차하면 육십통까지 걸려서 한판에 이백몇십원까지 나가는 꼴을 당하기도 한다.

 

십원짜리 잔돈을 진시황 병마용갱의 무사용처럼 날라르미 세워놓아도 댓번 약값 물어내며 잔돈을 세어내면 세상에나 누리끼리 십원짜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화투판 담요 밑에 자랑반 밑천반 삼아 묻어 둔 백원짜리, 오백원짜리도 허무하게 털리고 마니, 경로당 할매들 화투판을 얕보다간 큰코를 다치게 생겼다.

 

사약에 똥약을 막느라 똥껍데기라도 나오기만 하면 눙깔에 불을 켜고 걷어와야 후환을 적게 받으니 껍데기 모았다고 고스톱판처럼 점수도 주지 않는 판국에 나중에 알맹이 세어보면 허무하기 그지없다. 그기다 풍약, 비약, 초약 막느라 그딴거 우겨쥐고 앉았다보면 내 패는 맨날 무우말랭이처럼 말라서 뒤 마려운 똥강아지처럼 혼자서 낑...낑.

 

어제밤도 상가집 다녀와 두어시간 쳤는데 가뿐히 팔백원을 털렸다. 나중에 잔돈이 없어서 쌍둥이 아지매한테는 20원은 가리까지 했으니 이 무슨 창피한 일인가.

낮에는 경로당에서 대추나무집 시어무이가 화투를 치고, 밤에는 대추나무집 시째 며누리가 가서 화투를 치니, 뭐잖아 우리집은 잔돈푼 숱하 털어 먹었다는 소문도 듣기겠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하고 우스개 소리를 하며 똥약이라도 일찌감치 할라치면 숫개 좆자랑 하듯 자랑스럽게 날라르미 올려놓고 혼자 흐믓해하기도 하니, 꼭 돈을 많이 따고 해야 물좋은 노름판은 아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면서 잃어도 아깝지 않은 돈을 경로당에 내놓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