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과로사 한다더니
농사 짓니라고 매일 땡볕에 나가 종일 김매고 땀 흘리고 할 땐 몸살이고 뭐고 몰랐는데
추수 다 해놓고 놀러 다닌다고 이틀이 멀다하며 돌아 댕겼더니 몸살이 났다.
당진 갈 때도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가라는 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듣고
걸친대로 그 저녁에 길을 떠났으니(얼마나 좋았으면 ㅋㅋㅋ)
거기다 저녁도 안 먹고 꼬박 세시간의 버스를 타고 갔고, 거기다 터미널에서 기다렸더니 나중에는 이빨이
마주치게 덜덜 떨었다.
황간에서 대전갈 때는 좋았다. 너른 버스에 두 발을 모두 의자에 올려놓고 동그마니
앉았으니 검은 밤하늘이 마치 바다인냥, 나는 거기에 오롯 떠있는 움직이는 섬 같다는 생각도 했다.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빼 저어 바암빼~~ 노래도 나온다
이틀 전에는 고창 선운사까지 갔다 오는 강행군(여긴 하루 종일 일어나서 흔들어야한다)에다 그 날 밤은
제사까지 지냈고, 다음 날은 그거 치우고 닦아 넣고 하느라고 또 무리를 했는데다 그래도 신경은 온통
당진행 허가증을 받기 위한 잔머리 굴리기로 곤두섰으니 몸과 정신이 얼마나 피로했겠는가 말이다.
제사 지내고 잘 밤에 슬슬 요대기전법을 펼쳐 나간다.
기분 좋게 어루만져주고 슬까르고 해서 고스방은 깜박 홍콩까지 갔다왔나보다.
착륙하자마자 바로 잠이 든다, 저 순간을 이용해야한다. 홍콩의 여운이 남아있지만 잠이 와서 사리분별이
살짝 혼돈일 때 나는 당진행 멘트를 슬며시 꺼낸다. 고스방이 홍콩간다고 나까지 홍콩 가면 안 된다. 나는
홍콩 반쯤 간 시점에서 정신을 차려 되돌아 와야한다. 그래야 목적을 달성 할 수 가 있다.
"저, 여보...당진까지 당신 택시(영업용)타고 가면 차비가 얼마나 나와요?"
"한 십 사오만원 나올껄?"(잠이 와서 죽겠는데 그걸 왜 묻냐는 식으로 대답을 한다)
"그럼 이십만원쯤 준다면 당진 가겠네요. 오후쯤에 가면 되는데...."
"누가 가는데? 이십만원이면 가지."
앗싸, 구링이 알같은 내돈이지만 당진까지 같이 간다는데야 아까울게 뭐있나
"응..그게 말이야, 나야. 손님이 나란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거기 모임이 있어 가야하는데 당신하고 같이 가면
내가 차비로 이십만원을 줄께"
"이노무 여편네가 정신이 있나없나. 그 돈이 그돈이고 니돈이 내돈이지...좔좔좔..(잔소리 흐르는 소리)"
이런 덴장할, 홍콩까지 갔다왔으니 좀 말랑말랑할 줄 알고 좋다했더니만 이젠 스방도 내공이 생겼다.
요대기 전법의 일부를 눈치 챈게 아닐까 싶게 완강하게 거부를 한다.
이러다 요대기도 날리고, 그 동안 잘 써먹은 비법 하나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나는 당진행은 고사하고
전전긍긍이다. 내가 너무 게을렀어. 한 이십년 살면 이럴 때 써먹을 비법을 댓개 마련해
놔야 했는데 오로지 잘 먹혀들어간다고 그거 하나만 고수하고 살았으니 어흑.
결국 나는 요대기를 홀라당 날리고 당진행을 포기했다.
포기하고 아까운 순간들을 씻어내기 위해 어머님과 딸과 같이 목욕을 가서 개운하게 씻고 왔다.
산뜻산뜻 옷에 스치는 살결의 감촉이 틀리다.
3인분 때를 밀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그래서 낮잠까지 늘어지게 잤다. 그러나 이 모든게
당진행을 위한 것이라는 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오후 4시 54분쯤 고서방이 전화가 왔다.
넌즛 다시 한번 어젯밤 귓바퀴에 속삭인 당진행을 꺼내니까
"나는 갈 수가 없고 가려면 혼자 가보든가..."이러는거다
그 때부터 마구 바쁘다. 국 솥에 불 댕기고, 반찬 점검하고 보따리 싸서 당진으로 마음은 달려간다.
여섯시 버스를 타고 가려고 뛰어 나오니 고스방이 동네 마당에 차를 대어 놓고 주차장까지 태워준단다
오호..이렇게 고마울수가. 그러나 꼭 한 마디 한다.
"이 시간에 가는게 서글프지도 않나. 거기 뭔 애인이 있나. 어이구 철딱서니 없는 여편네야..."
그런거 없어도 좋아, 애인이 없어도 철딱서니가 없어도. 그것 보다 더 좋은게 당진에 있거등.
낮잠도 충분히 자 두었어니 오늘 밤은 걍 뒤집어지게 놀면 되는거야. 그런거야 앗싸.
그 다음 이야기는 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도 아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이 밀려 조바심을 치는 내게 고스방은 전화를 두 번이나 해서 나를 족친다.
"여편네가 어제밤에 나갔으면 그 담날 일찍일찍 들어와야 하는거 아냐. 인간이 왜 그래?"
그 싸늘하고 매정한 고스방 목소리에 나는 고만 감기가 걸렸다.
어제 하루종일 골골하며 기침에 콧물에 가래에..(이젠 가래침을 뱉어도 아름다운 시절이 지나갔으니)
몰골 싸납게 끙끙 앓으면서 누워있었는데 ...정말이지 이럴 때 생각 나는 문구.
백수, 과로사 한다더니....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