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원한
1.
잠자는 시간이 자꾸 늦어지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어제는 대전 병원가서 공복에 검사를 하고 상민이와 같이 병원 근처에 가서 목욕을 하다
상민이는 "엄마, 이제 우리가 원정목욕을 다 다니네"하고 큰 궁뎅이를 내 쪽으로 돌려대며 등을 밀어 달란다. 식전에 피 한대롱을 빼서 그런지 등판을 미는데 영 힘이 없다.
헉헉거리니 상민이가 나가서 음료수를 하나 사 온다. 지 돈으로 사 왔는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갔다 ㅡ.ㅡ;;
부랴사랴 목욕을 끝내고 병원예약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뛰어간다.
그 동안 검사결과가 나왔다.
손가락 염증수치는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알약의 갯수를 늘이지 않아도 되겠단다.
어떻게 좋아졌을까. 약을 매달 받아 와서는 열흘치도 제대로 안 먹는데 ㅎㅎ
좋아졌다니 무조건 다행이다.
상민이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한달여를 통화도 안 되고 벨소리도 안 울리는걸 오로지 문자 하나에 의지해서 사용을 했다. 고장난 김에 아빠를 설득해서 최신형으로 바꿔보려고 딸아이는 은근슬쩍 기대를 했는데
a/s가 가능하다며 고쳐준다. 베터리도 배가 불룩하게 되어서 새로 하나 사고.
오만 천원의 수리비가 들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샀으니 핸드폰 하나로 사년을 쓴 셈인데, 이제 수리를
했으니 앞으로 삼년을 더 쓴다면 핸드폰 하나로 칠년을 사용하는셈이다. 짠순이 상민이 대단해요!!!
새 핸드폰에 대한 미련이 남는가 친구에게 그 동안 통화 못한 것을 하면서 슬쩍 내 비친다.
"아, 있잖아 고치고 나니까 존나 잘 돼. 뭐 이런 탱크폰이 다 있다냐!"
2.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다.
고스방은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는 화장대 앞에 앉아서 머리스타일을 다듬는다
참말로 지극정성이다 머리에 공을 들이는 시간은.
나는 감고, 닦고, 털고, 두 어번 빗질하면 그만인데, 고스방은 머리결 하나하나를 방향 틀어잡으며 매만진다.
아, <매만진다>라는 말을 쓰고 나니 기분이 좋다. 부드럽고 단단한 손매가 차근차근 모양을 바로잡으며 애정의 눈길을 보내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이건 곁길로 간 이야기다.
부시시한 눈으로 일어난 나는 매만지는 손길을 쳐다보며 잠이 덜깬 나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는게
"여보, 내가 조금전까지도 꿈을 꾸다가 일어났는데 어데 먼데 버스 여행을 가는 꿈을 꾸다 깼어요. 어딘지 몰라도 바위굴도 지나고 개울도 지나고 그러는데 결국은 종점까지 못가고 깼네. 꿈은 항상 왜 이런지 몰라.."
머리를 매만지던 고스방 대뜸,
"누구랑 갔는데..."
"누구랑 가다니? 아하, 몰라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여자들하고 단체 관광을 가는 거였어요"
"그럼 너는 혼자 간거야?
"우리 식구는 없었으니 혼자 간거겠지. 아이, 단체여행이였다니깐.."
"저봐, 저봐, 저 여편네는 맨날 저 혼자 존데 다 돌아댕기지. 설마 혼자였겠어? 어떤 놈하고 같이 간겨?"
으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도대체 꿈을 자기 의지대로 꾸는 사람이 어디있나. 내가 델고 가고 싶은 놈을
꿈에서도 데리고 갈 수 있는겨? 그 경지에 이르렀으면 내가 발바닥에 흙을 묻히고 살긋냐.
저 뿌리 깊은 원한을 어떻게 풀어줄꼬..
내일부터는 시나리오를 좀 바꿔야겠어. 꿈에 설령 언놈을 델고 갔더라도, 슬쩍 언놈을 고스방으로 바꿔주는 쎈쓰!
자, 자, 오늘 밤은 어느 낯선 곳으로 고스방과 여행을 떠날끄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