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일
양력의 해는 밝았다.
황주동 북살미 산날망에서 해돋이 행사가 있다고 자치위원장이 누누히 선전을 하여 많이 참석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어젯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종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는데 나는 잠이 들었다. 그러니까 한 방 종을 때리고 디잉~ 하는 소리가 나며 다시 종치는 막대기를 몇 사람이 끄잡아 뒤로 물리는 그림은 기억나는데 다음 풍경이 기억이 안 난다. 잠이 든 것이다.
퍼뜩 일어나니 다섯시 사십분이다. 황간에서는 황주동 북살미 산에서 매년 해맞이 부부등산 행사가 있다.
한번도 고스방과 함께 산을 오른 적이 없다. 나 혼자 그 옛날 운동한다며 몇 번을 올랐다가 혼자 산길을 잃고 세시간도 넘게 헤매다 살아 남아 온 뒤로 그 산에 간 적이 없다. 산이 무서워졌다. 이젠 길로만 다닌다.
새해라고 뭐, 일어나 별 뾰죽한 수가 있으랴 시린 엉덩이 내놓고 오줌을 누고 밤새도록 저장된 가스를 변기통이 놀래도록 울려주는 것이다. 산에 가야한다고 어제밤 이야기를 해 놓았더니 고스방이 태워준단다. 정말 이장이 되니 여편네에 대한 예우가 대번에 달라지는 걸. 므ㅡㅡㅡㅡㅡㅡㅡㅡㅡ흣.
정신없이 옷을 갈아 입고 장갑을 챙기고 머플러를 목에 두르는데 생전 산에 안 다닌 고스방은 섣달 초엿새 새벽 날씨를 우습게 봤것다. 장갑도 안 끼고, 그 바쁜 와중에도 감고 드라이한 머리모양이 망가진다고 모자를 쓰지 않는다.
북살미 산을 렌턴을 들고 천천히 오르는데 십여분도 오르지 않아 고스방이 헉헉대며 나무에 기대선다
아직도 미명이 닿지 않는 산은 깜깜하여 발 앞에 비춰지는 불빛에 간신 의지해서 산을 오르는데 겨우 십분에 쉰다니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는가. 나는 숨도 한번 안 차고 올랐는데 고스방은 아주 주저앉을 태세다
나무에 기대서는 식은땀이 난다면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한다. 어제밤 급하게 먹은 만두가 체했나..머리를 짚어보니 식은땀이 끈끈하다. 그래도 사람이 꾸역꾸역 올라오니 또 재촉해서 가고, 또 가고.
하여간 오르면서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나는 한 손으로는 렌턴으로 길을 밝히고, 한 손은 고스방 손을 잡고 앞에서 끌고, 그것이 안되면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 올린다. 휴~~ 겨우겨우 산날망에 올라가니 해뜨는 산에 구름이 붉은 기운을 띄며 차렵이불처럼 띠를 만든다. 아...붉은 기운이 비치니 이제 곧 해가 뜨려나봐. 여보 얼릉 가자.
산날망이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바위 앞에 비집고 들어가 고스방을 불러 바람을 피하게 한다. 산을 오를 때도 엉덩이를 밀면서 생각하였다. 혼자 집구석 울러매고 가느라 얼매나 힘들었을까나. 나는 잠깐 궁뎅이 밀어 주는데도 힘이 드는데...긴 세월 혼자 삭히고, 혼자 준비하고, 혼자 애면글면한 고스방의 짐을 나는 그의 궁뎅이를 밀어주면서 느낀다. 걱정마 고스방. 이제 나도 조금 보탤테니..으흐흐흐
생전 처음 산날망에서 해돋는 모습을 본다며 고스방은 아이처럼 좋아한다. 박수도 친다. 나도 부러 큰 소리로 환호하면서 고스방 박수 소리에 힘을 보탠다.
산에서 황주동 청년회에서 준비한 조촐한 제상 돼지머리에 봉투를 끼우고 절을 한다. 나도 하려다 좀 부끄러워 내년으로 미룬다.
이장님, 군의원, 황간농협 조합장...뭐 이런 순서로 인사가 끝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만세삼창을 한다.
각자의 마음 속에서 여러겹 접고 접어 고이 보관한 소망을 해를 보며 나즉히 되뇌어본다. 그런다고 뭐 꿈이나 소망이 냅다 이루어지는건 아니지만..그냥 해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자신에게 다짐을 두어보는 것이다.
사색이 되었던 고스방은 해를 보며 기분이 좀 나아졌나보다. 체한게 아니고 새벽 찬공기 때문에 혈압이 올라간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제 오십 둘인데 그 나이에 무덤만한 산에 오른다고 그렇게 헉헉대다니.
산을 내려와 부인회에서 준비한 떡국을 한 그릇씩 먹고 집에 오니 말 안 하고 갔다고 아버님 어머님이 노발대발이다. 에이씨...산에 올라가 빌고 빈 소망이 말짱 헛것이여. 에고. 백 날 잘 해도 한 번 삐끄러지면 그 동안의 것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세상일.
대충 치워놓고 뜨신 방에 들어와 살풋 한 숨 자면서 그런거 저런거 초하루부터 마음 상한 것들을 잊기로 했다.
안 잊으면 어쩔겨? 내 속사람만 상할 뿐이지..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