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오늘 저녁은 왠일로 고스방이 일찍 저녁먹으러 왔시유
낮에 남은 콩나물밥을 비벼 먹고 나오기에 사과를 하나 깎아서 냉큼 입으로 넣어줬지유
조금 앉았다가 나간다하기에 나 도서관에 좀 델다 주세요 했더니
흔쾌히 그러고마 하네유
책 한권 넣고, 일기장 넣고, 편지지 두 장 넣고, 새로만든 필통에 빨간색, 주황색 색연필 두 자루 넣고
퍼뜩 고스방 따라 나섰세유
도서관 앞에서 차를 세워주고는 고스방은 또 일하러 갔재요
9시 도착하는 기차 손님 보고 집에 들어간다고 하네유
나는 도서관 올라가서는 실쩌기 딸래미 옆 자리에 앉았세요
공부하다가 누가 옆에 앉나 곁눈질하던 상민이가 날보고는 깜짝놀래더니 옆에 지 동생한테도 웃으며
엄마 왔다고 소곤소곤 이야기 해요
의자에 앉아서 목도리 풀러서 접어 깔고 앉으니 폭삭해요
앉아서 일기장을 꺼내 밀린 일기를 쓰는데 일주일 전의 일인데도 오락가락해요
써 놓고 보니 화요일 일어난 일을 월요일에 한 일이라고 써놓구...이리저리 맞춰보니 그래요
나중에 보면 내가 일기를 미뤄서 썼구나...하고 울 딸하고 일기장 읽으며
그 때 말야, 내가 느그떨 공부하는 도서관에가서 밀린 일기를 썼는데 날짜가 뒤죽박죽이여 히히
일 주일분의 일기를 다 쓰니 팔이 조금 아파요
뭐 쓰는 도중에 생각난 것도 금요일 일기 쓸 때 생각났으면 그날 생각 난 듯 막 써요
소설이 따로 없시유
일기를 다 쓰고, 이제 준비해 간 두 장의 편지지를 꺼내요
그냥 도서실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석유난로를 그리고,
샷슈 칸막이 너머에 있는 시덥잖은 풍경을 그려요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편지를 쓸 때 가장 내 손이 내 생각을 잘 표현해요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라요
그대들은 무엇을 앞에 두었을 때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시남유?
술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