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먹는 막걸리

고구마 보이

황금횃대 2009. 2. 26. 22:06

 

 

1.

작년 여름 감나무 사이로 대앳골 고구마를 심었다.

아버님이 그 땡볕에 앉아서 고구마밭을 매시고, 나도 여러번 낫으로 풀을 깎았다.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 순을 심었는데 땅이 질고 비닐멀칭을 해서 심었더니 호박고구마 덩쿨은 땅 속에서 십리를 건너간다.

고구마를 캐니 콘티박스에 열 한개가 나왔다. 동네 회관에도 한 푸대 갖다 주고 형제간에도 박스로 부쳐주며 나눠먹었다. 처음 캐서는 열심히 삶아먹고 구워 먹었는데 그것도 몇 번하니 시들해졌다.

거실에다 박스를 세워서 고구마 담는 통가리를 만들어 얼라 베개만한 것, 내 장단지 만한 것들을 차곡차곡 재워서 담아 두었는데 겨울 내도록 보일러 팡팡 돌렸더니 고구마가 비들비들 마른다.

 

고스방이 요새 똥에 관심이 많다. 며칠 전 변비로 고생을 하고 변비약을 내리 사흘 먹고 염생이똥을 만드는 일에서 해방이 되었다. 다시 염생이똥 누던 시절로 돌아가기 싫어서 요즘은 열심히 고구마를 먹는다. 밥은 밥대로 먹고 저녁에는 고구마를 삶아서 또 먹는다. 고구마 하나 씻어 썰으면 한 냄비 가득이다.

 

한 개 삶아 이틀을 먹어도 못 다먹을 판이다. 고스방이 고구마 익은 것을 포크에 찍어서 가져오며 이렇게 말한다. "나 요새 고구마보이가 됐어." 허걱, 오십줄을 훌쩍 뛰어넘어도 <보이> 하고 싶은 모양이지. ㅋㅋ

 

2.

감기 기운으로 사나흘 기침 하시던 아버님이 어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기침을 하면 옆구리가 절린다고.

내리 이틀 대전 병원에 왔다갔다했더니 기운이 쭉 빠진다. 오랜만에 삭신이 살곰살곰 아픈게 몸살을 좀 할 것 같다. 몸살도 해 보면 할 만하다. 평상시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 내 숨소리가 가쁠 때는 어떤 호흡을 하는지도 알게 된다. 은연중에 내는 신음소리도 들을 만하다. 상가집에 가면 별로 슬프지 않으면서도 곡(哭)소리 하나는 기똥차게 뽑아내는 며느리가 있게 마련인데, 꼭 그 짝이다. 아픔의 강도보다 앓는 소리가 예술이다 아니 애술인가? ㅋ

 

3.

오늘 병원가서 잠깐 짬을 내서 양샘하고 오랜만에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그 동안 나는 수다가 고팠다. 맨날 동네 사람 상대로 이런저런 설명만 하고 예, 예 대답만 하는 말만 했는데

그리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나는 세상을 더 자세히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