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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을 묶다.

황금횃대 2009. 3. 1. 19:51

구획정리 된 반듯한 앞 논 천여평은 두 다랑지로 되어 있다.

고스방이 어릴 때 타고 놀았다던 그네를 매던 느티나무는 이제 안개 속 형체처럼 간신히 썩은 몸을 해골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 느티나무 옆 사백여평의 논과 그 옆 논 아래 한 칸 육백여평의 논이 있어 우리는 그 논에서 벼농사를 지어 양식을 해결하고 있다. 해결뿐만 아니라 형제들에게 한 두가마니씩 나눠 먹을 수 있는 여유까지 준다.

 

어제까지 놀던 농사꾼들은 오늘을 기점으로 들에 나갈 채비를 한다. 경운기에 기름을 채우고, 엔진오일을 점검하고, 뒷 짐칸에 쏠려있는 썩은 낙엽들을 땅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농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논흙도 녹아서 질척이고, 논두렁에 지난 여름 심어 대궁만 베어갔던 남았던 콩뿌리도 발끝으로 툭툭 차면 알아서 흙쪽으로 쓰러져준다. 새해 농사를 위해 묵은 것들이 스스로 땅으로 스러져 스미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농사꾼이라. 아직 이 절기에는 무슨 씨앗을 뿌려야하는지, 추비를 언제해야하는 건지, 콩 순은 언제질러야 튼실한 콩꼬투리가 달리는지 도무지 외고 있지를 못하지만, 눈치 하나는 절간 가도 고기 얻어 먹을 눈치라, 꼭 외고 있어야 농사를 잘 짓는 것은 아니지. 그냥 눙깔 굴러가는 소리가 또록또록 나도록 눈치껏 농사를 짓는 것이다.

 

산자락 아래라 더디 햇볕이 나오고, 일찍 햇님이 숨어 버리는 감나무밭도 언 땅에서 해방이 되었다. 고춧대가 겨울을 지나는 동안 하얗게 대궁이 바랬다. 오디가 까맣게 떨어지던 팥 심었던 골도 너덜너덜 비닐자락을 휘날리며 을씨년스런 봄 밭 연출에 한몫을 하고 있다. 슬슬 낫이나 깔꾸리를 들고 밭으로도 발걸음을 해야 하는 계절이 온게다.

 

게으른 농사꾼 아니랠까바 넘들은 일찌감치 볏집이 포르리할 때 소 먹이는 집으로 짚을 다 넘겨서 짚 묶는 기계가 와서는 드럼통처럼 둥그렇게 뭉치거나 혹은 벽돌짝처럼 네모 반듯하게 짚을 묶어 일찌감치 갈무리를 하였는데 우리는 이제서야 짚을 묶으러 갔다. 내일이 학교 개학이니 오늘 중으로는 어찌됐던 자슥놈들을 설득해 논으로 놈들을 몰고 가야 할 판이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를 돌리며 아직도 잠에서 깨어 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논에 같이 가자고 설득을 한다. 설득이 아니지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야들아, 오늘 엄마랑 같이 짚 묶고는 저녁에 대전 가서 근사한 페밀리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거야. 어때?"

한번도 펨레에 가보지 못한 아들놈은 잠결에도 스테이크란 말에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정말 갈거냐요 묻는다. 이때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 영악한 놈들이 바로 알아차린다. 에이 엄마 쇼하시는구만...하고.

그렇게 물을 때는 한치 주저하는 기색없이 바로 대답을 해야한다. 어허, 이 에미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릴 하는고...

"엄마가 뭐 여태 약속을 어지간히 잘 지켰어야 말이지..."

"컥! @#$%^&"

 

겨우 아이들을 꼬셔서 아침밥을 먹이고 노끈을 사서는 앞논으로 갔다. 만장지장 펼쳐진 짚을 보더니 놀라는 기색이다. 그래도 부지런히 독려를 해서 짚단 묶는 법을 알려준다. 말이 알려주는 것이지 나도 시집 와서는 첨으로 묶어보는 짚단이다. 먼저 노끈을 한 발 길이로 재서 끊어 놓구선 낫으로 날라르미 깔린 짚을 살살 궁굴려 둥그렇게 뭉친다. 그 다음에는 밑동부문이 한 번은 이쪽으로  또 다음번은 저쪽으로 놓아서 높이를 맞춘다...어쩌구저쩌구..."

 

노끈을 길게 늘여놓고 아이들보고 짚을 거둬오라하니 되는대로 뚤뚤 말아 온다. 안그래도 짚길이가 짧은데다 깐총하게 놓질 않으니 묶어도 실실 빠진다. 에라이.

내가 시범을 보인다고 짚을 뭉쳐와서는 동개동개 올려놓고 양쪽의 끈을 맞잡아 당기니 끈이 짧다. 그래서 무릎으로 짚단을 밀면서 끈을 지출라 매듭 묶을 길이를 확보하니 아들놈이 어이쿠 엄마 솜씨가 장난이 아닌데? 한다. 낸들 이런거 해봤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이왕 나는 짚묶는 전문가가 되었으니 으흠..으쓱하며 이렇게 해야지!하며 단단히 다짐을 두는 것이다.

 

하루종일 짚 끌어모아 끈을 당겨가며 손가락에 힘을 줬더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는둥, 손목이 짚에 찔려 벌겋게 변하고 따갑다는둥, 체력이 고갈되었다는둥...집구석 일꾼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페밀리레스토랑 가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피곤하니 동네 삼겹살 집에서 밥을 해결한다.

일하다 먹는 밥이니 얼마나 맛있는가. 울 아덜놈 아숩단 소리도 않고 잘도 먹네. 그래..할아버지는 니 나이에 장가를 가서 큰 고모를 낳으셨단다. 그깟 짚 백 단 묶었다고 그렇게 힘들어하면 안되지. 밥 먹고 힘 내!ㅎㅎㅎ

 

저녁엔 주민자치위원인 오봉이 아저씨 장인영감님이 돌아가셔서 낮에 일하며 먹고 싶던 소주 일 잔을 상가집에서 마시다.

고단한 하루였지만 뒷통수 무겁게 하던 짚을 다 묶어 놓았으니 개운하다. 이제 논도 갈고, 물도 잡고 못자리도 하고..그러면 된다. 나보다 고스방이 더 좋아한다. 허기사 차 몰고 다니면 다른 집 논은 싸악 치와져 깨끗한데 우리집 논만 바닥 가득 짚을 깔아 놓았으니 볼 때마다 얼매나 뒷골이 땡겼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