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하루종일 돌아 댕기다가 저녁 때되서 한 숟갈 떠였코 앉았으면 얼굴에 꼬장물이 졸졸 흐르지,디러워 죽것지?
면사무소에 인구조사, 그러니까 거주자 조사를 집집마다 댕기면서 체크 해가지고 갖다 주고 때꺼리 뭐라도 하나 사서 낑낑 들고 와서는 앉을 틈도 없이 가디건 벗어 던지고 저녁 차리는 어머님 눈치를 보며 삼겹살을 굽는다
오늘이 3월 3일 삼겹살 데이라고 한양사는 비아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아, 3(삼)자가 겹치니까 삼겹살데이군.
무슨 데이 무슨 데이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살판났구만. 하나로 매장에 갔더니 삼겹살 할인해서 판매한단다
목살을 향하던 손가락을 방향을 살며시 돌려 고기파는 삼촌한테 그럼 삼겹살 사갈까? 하고 주문을 한다. 두 근만 얹어 주소.
상추를 씻고, 쌈장을 준비하고, 미역국을 떠서 밥상 앞에 앉으시는 아버님 앞에 놓고, 고기를 굽고..
어머님은 쪼매 인상이 안 좋으시다. 그도 그럴것이 이누무 여편네가 허구헌날 일이 있어 나가니 어찌 옛생각이 나지 않으시겠는가. 아무리 내가 허덕거리며 집에 들어와도 딱 열두시 점심 시간을 맞추기가 좀 어렵고, 저녁 여섯시 밥 때에서 조금 물러앉은 시간에 내가 집으로 들어선다. 어쩌던동 나는 어머님이 '밥을 차려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시간 이전에 집에 있거나 밖에서 들어 와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 똥배짱이 늘어서 밥 때를 스리살짝 넘기기가 다반사다. 언젠가는 터질 것 같다. ㅎㅎ
오늘 아침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비 오듯 눈이 내렸다.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딸아이는 작년 삼월 삼일에도 눈이 펑펑 쏟아졌다고 작년을 기억했다. 오티 갔다가 폭설을 만났다고. 그래그래, 사람만 어디 지난 일을 추억하긋냐...눈들도 지난 날의 행위를 추억하고 가끔은 재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거겠지 안그냐?
아침 열시 버스를 타고 눈이 쏟아지는 풍경 속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 흥성히 내린 눈이 산과 들을 하얗게 덮었다. 버스 안은 적당한 습도와 안온한 기온을 머금고 있다. 나는 길다란 가디건의 허리띠를 여며 묶으며 어디론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허름한 처마 밑 여닫이 창호문을 열면 따뜻하게 불 지펴 놓고 날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발을 파묻고 그가 준비한 물고구마를 먹으며 가끔 이야기 속에 목메이는 시늉을 하면 그가 내 등을 두드리며 찬찬히 물사발을 들어 날 먹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생각은 꼬리를 물고 묵은점 고개만디를 넘어간다.
한참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답게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달뜬 볼때기를 식히려 여닫이 문을 왈칵 열면, 어데서 한 줄기 바람에 후두둑 눈무더기 떨어지는 소리 듣기고 이 소리와, 이 풍경과, 이 상황이, 과거 어느 때 꼭 한 번 있었던 기억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목소리도 잦아 들고 그의 목소리도 잦아 들면 둘 다 묵언의 눈짓 한번 맞추고 슬그머니 요대기 밑으로 같이 스며들어도 좋으리라.
퍼뜩 정신을 차리니 영동까지 어지가히 다 왔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나는 영동역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음전한 아줌마에게 파워포인트 강의를 한다. 새 슬라이드가 어떻고, 마스터가 어떻고, 제목 슬라이더는 따로 빼구요, 예, 예, 삽입에서 날짜와 바닥글, 그리고 슬라이드 번호 체크하면 되시고요...그리고 오늘은 만들어진 슬라이드 디자인으로 하지 말고 직접 슬라이드 디자인을 한번 만들어보입시데이..
아침,
그리고 점심
또 저녁.
고스방은 제 여편네가 아침에 내리는 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혀 눈치를 못채고, 얼굴에 점하나 찍었다고 즈그마누래도 못 알아보는 등신그튼 교빈이와 민소희의 비틀린 웃음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