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그러고 보니 올 삼월은 달력도 못 만들었네. 예전에도 바쁘긴 매 한가지였을터인데 결론은 열정이 사그러졌다는거지. 달력을 만들어야지..하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물감풀고 컵에 물 따로 떠와야 하고 붓찾아야하고 그런 것들이 점점 번거러운거야. 예전에는 뭐 수월케했나? 그 땐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철철 넘쳐서 한 장이라도 더 그리고 쓰고해서 보냈지. 지금 이지경에 그 땔 생각하니..다아 젊은 마음이라. 젊은 마음은 왜 그리 장마철 봇도랑 넘치듯 힘이 철철 넘치는 것인지. 순정도 넘치고 열정도 넘치고, 광기도 넘치고 집착도 넘치고, 모든 것들이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했던게야 그런데 요즘은?
며칠 전 영동갔다가 돌아오는 버스를 탔는데 동네 아줌마가 탔어. 병원 다녀 오시는 길이세요? 하고 물으니 그렇대. 그러니까 오십 넘어 환갑 가까와 오는 아줌마들이 서둘러 볼일 보고 그 시간에 버스를 탄다면 십중팔구는 병원가서 물리치료 받고 오는 시간인게야. 일 하다, 자슥 키우다 , 시부모 모시다 그렇게 제 몸이 병들은거지. 자고나도 몸이 개운치도 않고 여기저기 온 전신이 쑤시는것 같구, 어깨는 뻐근하고, 다리뼈도 시큼시큼 아프지, 뭣이든 급하게 먹으면 꾸역꾸역 체하지..이런 여러 증상을 한 몸에 떠 안고 사는거지. 그래서 하루를 좀 편안하게 보낼려면 만사 제쳐놓고 아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 여기저기 기계 안마라도 받고 찜질 팩이라도 얹어야 하루가 좀 부드러운겨.
"아이고 이젠 좋은게 없어. 그저 안 아프면 좋겠어, 옛날에는 잠시 짬이라도 나면 떼지어 대전 나가 춤도 배우고, 맛있는거 먹으러도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집 밖에 나오기도 싫어. 사람들하고 말 섞는것도 귀찮고 뭣이든 흥미가 없네. 이거 다 살은거 아녀?"
넘들 예쁜 가방 들고 다니면 그게 샘이 나서 어쨋던 남편 호주머니 알게서 그거 살라구 눈이 시뻘갰는데 요새는 뭐가 좋은지, 누가 꼭 하고 싶은거 있으면 그저 해 준다고 해도 도무지 갖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네. 그녀의 넋두리는 계속 된다. 이것저것 주워듣고 종합해보니 집까지 어지가히 다 왔는데 결론은 버킹검, 열정이 사그러들었다는 얘기다.
어제는 또 오랜만에 꽃꽂이샘을 만났다. 그녀도 나처럼 도시에서 시골로 시집왔다. 그녀는 여태 내가 만난 사람중에 가장 꽃꽂이를 잘 하는 사람이다. 손도 나처럼 몽땅하게 퉁퉁하게 생겼는데 수반에 꽃을 꽂거나 꽃다발을 만들고 꽃을 포장할 때는 민첩하게, 정확하게 움직이고 수형을 살려 놓는다. 곱슬버들을 좋아하는 그녀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꽃집에 들렀더니 이 년전에 내가 앓은 증상을 앓고 있다.
걱정이 늘어진 그녀에게 내가 그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알려주고 컴퓨터 리본 인쇄하는 프로그램을 새로 깔아 주었다. 자기는 몇 번이나 해도 잘 못했는데 역쉬나..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준다. 나는 프로그램을 깔고 그녀는 도구통을 가져와 호박씨, 호두, 아몬드, 땅콩을 콩콩 빻아서 단호박을 삶아 으깨 호박경단을 만들어 찧어놓은 견과류에 또르륵 굴려 내 입에 넣어준다. 처음에 황간으로 시집와서는 양식, 한식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샐러드 드레싱도 직접 만들어서 예쁜 그릇에 장식을 하여 내 놓으면 보기 보다 다르다고 사람들이 한 번 더 쳐다봤다구했다. 그런 그녀도 꽃집을 하고 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다녀야 하니 요리도 살림도 이제는 바람처럼 한다고 했다. 세월의 삭풍을 견디며 리는 살기 위해 이렇게 적응하고 변화했다고하나 결국은 더 이상 음식 정성들여 만들고 꾸미는데 필요한 정열이 바짝 오그라들었다는 얘기다.
어제는 비가 내려 살구나무를 젖게 하더니 오늘은 바람 불어 꽃눈을 말린다. 우리 껴안고 사는 날들도 더러는 젖었다가 더러는 말랐다가..그런다.
꽃샘의 작품^^
울 딸이 딸기쉐이크 레시피 본다고 나오라고 한다 어디서?
컴퓨터 앞에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