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년만에
어제 울아부지께서 하나 밖에 없는 시집간 딸 집에 와서 주무셨다. 이십년만에 첨이다. 딸네집에 가끔 놀러는 오시지만 시부모님이 계시니 매번 당일로 다녀가시고 주무시고 가신 적은 한번도 없었다. 봄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오고 감나무밭에 가보지 지난 가을 농사짓고 버리고 간 잔재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 불에 태울 것은 태우고 짚도 깔아줘야하고..그래서 아버지게 구원의 전화를 걸었다. 안부전화를 빙자한 일 도우미 전화였다. 아버지는 안그래도 심심해 죽겠는데 잘 됐다며 조카 머슴아 둘 데리고 새벽차를 타고 오셨다. 아침을 우리집에서 드시고 곧 바로 작업복 갈아 입으시고는 밭으로 가신다. 목 축일 몇 가지 챙겨서 나도 따라 붙었다.
아버지는 지난 가을에도 들깨 타작을 해 주신다면 엄마하고 같이 왔다. 어제는 엄마가 감기가 채 낫질 않아서 아버지하고 조카들만 왔다. 꼬맹이들은 들판을 돌아댕기며 신이 났다. 짚을 나르고 검불을 태우는 불장난에 동참한다. 갈구리질을 해 보고 신기해하며 냉이 뿌리를 보고 인삼이라고 한다. 풀을 캐고,쑥을 뜯어 보더니 그것도 힘든가 이내 칼을 던진다. 하루 종일 긁고 태우고(산불날까바 많이는 못 태우고 조금씩) 치우고 옮기고 한다. 아버지는 도시의 마당같이 깔끔하게 하지 못하는게 영 마뜩찮으시다. 농로 잡풀까지 낫으로 쳐서 불구덩이에 집어 넣으신다. 참깨 농사짓고 내버려둔 비닐망도 호미로 캐서 다 뜯어내어 포대에 담아 놓았다.
"아부지, 밭은 암만 깨끗이해도 마당그치 못해요. 좀 있다 풀 나면 그런 검불들은 다 묻혀서 보이지도 않어요. 괘안아요"
내가 아무리 아버지에게 말씀을 들여도 아부지는 긁어 모으고 태우고 하신다. "저어기 언덕배기도 싹 좀 치웠으면 좋겠구만..."
일하고 점심으로 삼겹살을 구워서 밥을 먹는다. 아이들도 잘 먹고 나도 잘 먹고..오랜만에 시부모님과 친정 식구들이 한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