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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차(次)와 2년차(次)

황금횃대 2009. 4. 30. 21:23

 

 

 

촌으로 시집와서 18년 살 동안에는 고사리 꺾으러 간다는 걸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 작년에는 포도밭에 일하다가 하도 일이 지루하면 옆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꺾었는데,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고단함은 둘째치더라도 그거 한 옹큼 꺾어서 봉다리에 차곡차곡 넣는 재미가 어찌나 좋은지 포도일보다 고사리 꺾는 일이 더 좋았다.

한 번 해 본 일이 재미있는 일이면 해가 바껴 고사리가 슬슬 올라 오겠다 싶은 기온이 되면 몸은 좀이 쑤신다.

아직은 세발고사리라고 가느다란 고사리가 올라 오는데 그걸 알면서도 빗줄기 쥐오줌 마냥 흩뿌리고 나면 산꼴짝이 온통 고사리밭이라도 되는 양 마음이 설레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 설거지만 끝내면 배낭을 울러매고 고사리 꺾으러 서너번을 갔었다. 작년에 동네 뒷산은 산판작업을 하여 새로 나무를 심어서 민둥산에 가깝게 산이 훤하게 비었다. 골골이 베어진 소나무가 일렬로 얽혀서는 장작이 되어가고 있다. 이즈음은 산에서 나무해서 불때는 집이 없어서 좋은 나무들이 그대로 썩어간다.

첨에는 고사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 사방을 해매고 다니다가 슬슬 고사리가 올라옴직한 장소를 익히게 된다

고사리 꺾는 감이 생긴다.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우는게 아니고 쌩으로 내가 체득해서 알아지는 것이기에 그 앎의 기쁨은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의 크기보다 몇 배 더 부풀어 오른다.

 

양지쪽 올고사리는 올라 오자마자 잎을 펴서 쇠버리기 때문에 나는 그게 아까와 아직 눈도 안 뜬 고사리를 손톱으로 파서 뜯다 싶이 잘라 온다. 그렇게 자르니 한참을 돌아댕기다 보면 엄지손가락 손톱부위가 은근히 아프다. 아픈게 대수냐?

 

점심 준비때문에 급하게 고사리 꺾은 것을 뭉쳐서는 배낭에 넣고 그제서야 마른 입 안에 물 한 모금 머금어 우그르르 양치를 해서 뱉구는  다시 병을 기울여 한 모금 물을 마시고 불나게 오토바이를 밟아(?) 집으로 와서 점심을 한다. 그럴 때는 속으로 시부모님과 같이 안 살면 나는 그냥 산에서 주먹밥이나 한 덩이 먹고 계속 고사리를 꺾을 것인데...하고 살작 아쉬워하기도 한다.

 

집에 와서 내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어머님은 고사리를 다듬으시고 , 식사를 하시는 동안 나는 그걸 삶는다

그렇게 삶은 고사리를 채반에 널어  놓고 들어왔는데 다 저녁 때가 되서 시동생이 고사리를 또 꺾어서 현관에 놓아두고 갔다. 이런이런..아니 어떻게 이렇게 굵은 고사를 꺾어 왔단말가.

 

내가 그렇게 동분서주 요령소리가 나게 산을 덭어서 꺾어 온 고사리와는 비교가 안된다.  나는 고사리 굵기가 평균 젓가락 굵기 만하다면, 삼촌이 꺾어 온 고사리는 파리채 자루만큼 굵었다.

아~~~~~~~~~~이런 좌절이 있나.

 

고스방한테, 슬슬 고사리 꺾는 감을 잡았다면서 오늘 낮에 채반에 널어 놓은 고사리를 손가락을 가르키며 침이 마르도록 나의 안목에 대해 자랑을 떠벌떠벌 하였더랬는데, 시동생의 고사리는 그런 자랑을 한방에 무지르고 나를 무색하게 만든다.

 

허기사 울 시동생은 고사리 잘 꺾기로 황간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니 고사리 꺾기 사십년 차와 이제 겨우 이년 차에 접어 든 나와 비교가 되겠는가. 그러기에 기는 놈 우에 걷는 놈있구 걷는 놈 우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벡지 나왔겠어?

 

어머님은 당신 아들이 꺾어 온 고사리를 어루만지며 연신 이 고사리는 어느 골짜기 고사리고 ...하시면서 아들 고사리 칭찬하기에 입술에 침이 다 마른다.

 

자, 자, 저 우에 두 장의 사진 중에 어떤게 이년 차 고사리고 어느 것이 사십년 차 고사리인지..

그대들은 아시것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