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고단한.
어제 아버님 생신이 지나갔다
토요일 음식을 장만하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다저녁에야 온 동서에게 서슬이 시퍼렇게 한 소리를 하였다
그 소릴 듣고 상민이는 내게 몬때`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몬때 소리들어도 속에서 부글부글 속 끓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다.
화가 잔뜩 났을 때 잡채에 넣을 당근을 썰었는데...ㅎㅎㅎ 그 모양이 가관이다. 그래도 바로 잡을 맘이 없어
그대로 후라이팬에 쏟아 부어 볶았다. 정성에 선한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해야 살이 되고 피가 될 터인데 저리 독한 기운을 잔뜩 쑤셔 넣어 음식을 만들었으니..쩝.
그렇게 또 한 가지 행사가 지나갔다. 다가 오는 목요일에는 또 제사가 있다. 5월은 날 보고 죽으라, 죽으라, 백번만 죽으라...한다. 그래도 영 죽지는 않고 여태 살았다. 나는 좀 독한 년이다.
포도밭에 올해는 첨으로 일하러 갔다. 너나없이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 쓰고 모자를 쓰고는 밭에서 서성거린다. 중무장을 하고는 포도밭에 가서 육손을 땄다. 아모 생각없이 일을 한다. 그러나 재빨리 움직이는 손을 따라 눈길을 주면서 아무리 머리 속을 빈깡통 처럼 비울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된다. 수천갈래의 마음 줄기가 분수가 되어 머리속에서 분수처럼 퍼져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고스방이 김천 직지사 분수 구경도 한번 안 데려가주고 봄을 보냈다.
12시 성당 종소리가 부개동 밭까지 들려온다. 쇠종을 사람의 손으로 울리는 소리는 참말로 멀리도 간다.
그늘을 찾아 소박한 도시락을 꺼낸다. 멸치볶음, 도라지나물, 김치에 상추와 풋고추.
국이 없어도 상추에 보리밥 한 덩어리 놓구선 쌈장 올려 오물락 싸서 입으로 넣으니 그냥그냥 먹겠다.
길가 그늘에 앉아 먹는데 장원규씨가 점심 먹으러 갈라고 차를 끌고 내려온다. 밥 먹다가 엉겹결에 길을 비켜준다. 이런 일상들이 이제는 포도봉지 쌀 때까지 계속 되겠지.
점심을 먹고 잠깐 산에 올라가 고사리 두 오큼을 꺾었다. 그거 어지가히 꺾어가는데 낯선 아줌마가 그 곳으로 온다. 차림을 보아 고사리 꺾으러 다니는 사람이다. 속으로 조금만 늦었으면 저 아주매가 내 고사리 다 꺾어 갔겠네...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끌끌
목을 싸자매서 일을 했는데도 거울을 보니 목뒷덜미가 까맣게 탔다. 태양은 또 내 몸에 제가 걸어가는 길을 한 자락 개척할 모양이다.
오후 두 시가 좀 넘어 고스방이 전화가 왔다. 자기는 논두름을 하는데 목이 말라 죽을지경이라며 날 보고 물을 가져오란다. 어휴...논하고 포도밭하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그래도 어쩌나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 거리니 착한 내가 움직일 수 밖에 ㅎㅎㅎ
수박 한 찬합 잘라서 넣고, 얼음물 만들어 갖고 논에 갔더니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고스방이 죽은 할아버지 반기듯 나를 반긴다.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진흙을 끌어 올려 논두름을 해야하니 힘이 들것지.
길가 전봇대 그늘 밑으로 간다. 고깟 그늘도 없는 것보다 낫다.
"아이고, 죽겟다" 소리가 늘어졌다. 시원한 수박을 먹고, 얼음물을 마시더니 살만한가 보다. 이긍..
저라다 상순이 없으면 고스방은 어찌살꼬..그 때도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큰 소리 땅땅칠까.
고단한 시절이다 오월은. 저나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