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포도순 지르면서 포도가지 결속을 같이 하려니 죽을맛이다.
매번 농활을 해서 포도순지르기를 쉽게 하다가 이번에는 오롯 시동생과 둘이서 그 일을 다 하려니
포도농사가 자칫 지겨워지려한다. 시동생은 포도순 지르다가 포도농사 냄새난다는 소릴 몇 번이나 내게 하였다.
지난 일요일에도 상민이가 도와줘서 일을 많이 했는데, 오늘 또 학교 쉬는 날이라 나랑 같이 포도밭에 일하러 갔다.
얼켜서 엉망인 순을 순서 바로 잡으며 결속을 하려면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웃는 낯으로 하기 힘든데, 다행히 상민이는 나하고 장난도 치고 웃기는 이야기, 친구 연애 이야기까지 옆에서 조잘대며 나를 웃긴다.
점심으로 냉면 한 그릇 먹고 과자 두 봉 사서는 다시 포도밭으로 가서 나머지 골을 다듬는다.
솎아낸 포도가지가 밭바닥에 낭자하다.
첨에는 바닥에 잘 앉지도 않했는데 나중에는 포도이파리 대충 몇개 날라르니 늘어놓고 상민이도 똥거름 우에 앉아서 쉰다.
엄마 힘들다고 뙤약볕 내리쬐는 밭에서 하루 종일 일 거들어 주는 딸.
나는 이뻐서 일이 힘들어도 내내 웃는 낯이다.
혼자 하면 지겨워서 아주 똥씹은 인상을 쓰고 일을 하는데 딸과 같이 하니 종일 즐겁다. 팔과 어깨 아픈거야 뭐 말 할 것도 없지만.
이제 내일 하루만 더 하면 얼추 기본 일은 다 끝이 나고, 다음 단계인 포도송이 고르는 일이 시작된다.
포도 봉지 쌀 때까지는 포도밭에 살아야하는데, 조금 접어 두고 이제 들깨모를 붓고, 콩을 옮겨 심는 일을 해야지. 이틀 전에 비가 와서 콩들 일제히 땅을 들어 올리며 싹을 밀어 올리고 있다.
그거 보면 살아 있는 힘이 어떤 것인가를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다.
이제야 저녁 한 숟갈 떠먹고 하루 일과를 쓴다.
"상민아, 고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