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디 아 나서 씩거 조진다더니.
해마다 고추는 사서 먹었다.
그저 시동생이 넘이 심다 남은 거 있으면 고추모를 얻어와서 몇 푀기 심어 놓고는 풋고추를 따먹었다.
올해도 그렇게 누가 주면 심고 안 주면 말고...하면서 차일피일 고추 심는 것을 미루다가 5월 이장회의
갔더니 안화리 이장님이 자기집에 고추 심고 백여포기쯤 남았다고 누가 가져가서 심을려면 심으란다
학교에서 발표하라믄 절대 손 안 들던 내가 이런 공짜 앞에서는 어디서 그런 순발력이 나오는지 "저요!"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손을 들었더니 민이장님이 "허허 마산리이장은 젊어서그런가 말도 떨어지기전에
손 올라오네"한다. 그날 오후에 빗방울이 후둑후득 듯는데도 오토바이를 타고 안화리까지가서 고추모를 싣고 왔다. 집에 와서 한 이틀 두었다가 밭을 장만해서 고추를 심었네. 내가 심은 거라 애착이 더 가서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땅내를 맡았나 싶어서 잎사귀색을 유심히 살피고 그랬다. 비 한 차례 오더니 고추가 싱싱하게 살아나고 옆가지도 많이 나서 볼 수록 이쁘다. 하루는 시동생이 비료를 가져갔다. 포도밭에 일을 하고 밭에 가보니 고추가 하루 아침에 시들시들하다. 이거이 뭔 병이 걸렸나 싶어서 시들한 고추를 뽑아 농약방에 가져갔더니 고추대궁이 마르는 걸로 보아 역병이지 싶다면서 고추 역병 약을 치라고 한다.
땡볕에 물을 집에서 한 말 받아가지고 가서는 플라스틱 분무기에 넣어서 약을 쳤다. 그래도 쉽게 깨어나지 않는다. 오늘 시들한 것을 병이 옮길까바 뽑아서는 멀리 갖다 버리고 내일 가보면 또 몇 포기씩 까무룩해져 졸고 있다. 속이 팍 상한다. 거기다 가지까지 그렇게 시드는게 아닌가. 고추 대열은 여기저기 빵구가 나서 보기가 흉해졌다. 또 시장에 가서 이젠 눈씻고 찾아봐야 겨우 보이는 몇 남은 고추모를 새로 사가지고 와서 죽은 곳에 다시 심었다. 그런데 새로 심은 것도 같은 방법으로 시들한다. 시동생이 밭에 왔기에 이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며칠 전 비 오고 비료를 했더니만 그런가봐요 한다. 이런 젠장!
원래 고추 비료는 고추 뿌리 부문에 바로 하면 독해서 바로 죽어버린다. 고추모 사이 사이에 구멍을 뚫고 조금씩 숟가락으로 비료를 해야하는데 복토한 부분에 바로 얹어 놓았으니 그게 죽지 사냐.
겨우겨우 비료 우환을 이겨내고 살아 남은 고추는 하나의 고비를 넘어선 듯 잘 자랐다. 무럭무럭 자랐다. 죽어버린 것들에대한 미련은 지웠다. 이거라도 잘 키워서 붉은 고추를 한 나무에 한 근씩 따야지. 꿈이 너무 야무졌나?
고추는 어느정도 자라면 지주대를 세워줘야 한다. 촌에 살아도 고추 지주대를 내가 세워봤냔 말이지. 긴 골 각각의 끝에 하나씩 돌멩이로 나무를 주워다 박고, 중간쯤에 하나 박고, 그렇게 지주대를 세워놓고는 고추끈을 길게 쳤다. 사이사이에는 결속기로 한 번씩 찝어주고. 고추가 어려서는 그게 괜찮았는데 고추가 좀 크고 비가 한번 오자 고추가 다 쓰러졌다. 밭에 가보니 기도 안찬다. 다시 어데서 지주대를 구해와서 사이 사이에 나무를 또 박았다. 그리고 줄도 조금 높은 위치에 다시 쳤다. 지나가던 분도고모가 고추줄을 고추모 사이사이로 돌려가며 S자로 쳐 나가야한다고 일러준다. 그렇게 했다. 이제는 괜찮겠지하고 며칠 뒤에 가보니 또 다 쓰러졌다.
머리에 열이 팍팍 오른다. 고추 줄을 치느라고 고추모를 끌어 안고 씨름을 했더니 고추가지가 다 부러졌다. 부상병 속출이다. 이건 치료도 안되고 부러진 가지는 눈물을 머금고 조롱조롱 달린 고추만 겨우 건지고 버려야한다. 장마가 오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키가 큰 고추는 또 쓰러진다. 바닥을 기는 고추가지에 굵고 튼실한 풋고추가 흙 디비기가 되었다. 경기가 바닥을 치니 이놈의 고추도 바닥을 기고 있고만...
오늘도 고추 줄을 한 번 더 보강해서 높여 치다가 고추가지가 세 포기나 똑 부러졌다. 어찌나 부애가 나던지 고추줄을 패대기치고 부러진 고추가지에서 고추만 따가지고 왔다. . 차라리 그냥 나뒀으면 죽지는 않을텐데 손 댔다가 아주 망하게 된 것이다. 어설픈 내게 화가 나고 부러진 고추대가 아깝고 미안하다. 문디 아 낳아서 씻어 조진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다
그제는 표고버섯 따다가 빨래 삶는 것은 깜박해서 홀라당 다 태워먹었다. 군데군데 시커먼 구멍이 난 내 빤스와 고스방의 손수건, 그리고 수건들... 고장난 세탁기, 물이 줄줄 흐르는 냉장고,,,살림이 날 위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닫고, 주끼는 일도 시들하고..자꾸 힘이 없고 가라 앉는다. 허기사, 너무 그동안 방방 뛰어서 가라 앉을 때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