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런 적 있어. 그러니까 그냥..
어제 오후에 전화가 왔다.
포도를 택배로 받은 사람이 포도가 다 터졌다고 전화가 왔다.
근데 아뿔사, 내가 그집 호수(아파트)를 잘못 적은 것이다.
택배는 배달 되기 전에 반드시 전화통화를 하고 배달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배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가기로 한 날은 넘으 집에 배달이 되었다가 그 다음날 아파트 관리실을 통해서 주문자에게 간 모양이다.
입에서 화근내가 나도록 일을 하는데 그런 전화 받으면 참말로 힘 빠지지. 여기서는 단언코 포도알 단 하나라도 터지거나 갈라진게 있으면 그걸 손질해서 보내지 모른척, 그냥 넣질 않는다. 구중궁궐같은 속속에 들어 앉았어도 눈에 띄였다면 포도 한 송이 못 쓰게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파내고야 만다.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아 포도 열과 현상이 다른 해에 비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포도가 깨끗하다. 그런데 그렇게 갓난 애기 다루듯 포도 송이를 꺼내서 분도 안 딲이게 손질해서 보내 놓으면 택배 상하차하면서, 혹은 배달하면서 집어 던져 포도가 터지게 된다. 포도 한 알 터지면 물은 거짓말 좀 보태 한 되 나온다. 포도 한 알에 포도 한송이를 다 적시고 남는다는 말이 된다.
젊은 여자가 전화기 저편에서 항의를 한다. 택배를 보냈으면 송장번호를 문자로 보내주시던지 어쩌고저쩌고... 아이고, 야이 여편네야, 나도 그렇게 해 주면 좋겠는데 오줌 누고 털 여가도 없어야.
젊은 여자는 내가 거듭 죄송하고 미안하다며 터진 것은 번거롭더라도 설탕 부어 술 담궈 놓으시고 내가 새로 한 박스를 바로 부쳐 드릴테니 노여움을 풀으라고 몇 번을 말했다. 그래도 궐녀는 화가 안 풀리는지 씩씩 거린다. 아이, 어쩌란 말야. 포도는 이왕 터진거구...
허기사 돈이 한 두 푼이래야지, 택배비 포함해서 삼만 사천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재. 어렵게 포도 한 박스 사 먹어 볼라고 결심을 굳혀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다 터져서 물이 주르르 흐르면 눙깔이 돌아가고 머리에 김나지.. 그래도 말이야, 그거 터졌다면 내가 속이 더 아퍼. 포도 한 송이 만들려면 기본으로 밭에 열 여덟번을 가야해, 거기서 좀더 손 볼라믄 너 댓번은 더 발걸음을 해야지. 사람만 수고 한게 아녀, 바람, 물, 공기, 햇볕, 온도, 습도, 거름, 미생물, 나비 벌들....수 많은 호흡과 손길이 가 닿아야지 포도 한 송이가 익는단다. 허기사 돈 삼만원 넘으 주머니에서 가져 올라면 쓸게니 배알이니 다 빼나야 하는 일이지만서두..
그래, 이렇게 이야기 해 주면 훨씬 부드럽지 않겠냐, 있잖아요. 아지매께서 애써 농사 지은 것을 받았는데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다 터져버렸네요. 어지간허면 내가 먹겠는데 도저 그럴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농사 짓는다고 욕보셨는데 말이예요..이러면 내가 덜 속이 상하지. 우리 밭에는 아직도 포도가 주렁주렁 달렸고, 지금 창고에는 따 놓은것도 몇 콘티나 있는데 말야.
가마히 생각하니 나도 옛날에 택배로 물건 받아서는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왔을 때 따따부따 딱다구리처럼 주끼댄거 같어. 옷이든, 신발이든, 농산물이든...뭣이든 사람 정성이 안 들어간게 어딨겠냐구. 하다못해 바느질이 튿어진 옷이 와도 와르락 전화기 돌려 버럭거릴게 아니구 어이쿠, 이 옷을 바느질하는 어느 공장 아가씨가 얼매나 잠이 와서 이렇게 바늘땀이 건너뛰었을꼬...하는.
살면서 그런 마음 가지기가 싶지않어. 왜냐면 말이지 그런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돈이 더 중한 시절이 되어버려서. 나도 마찬가지여..뭐든 돈돈..
항의 전화 받자 바로 박스 새로 얹어 놓고 궐녀에게 보낼 포도를 포장하면서..
"야, 포도야, 이번엔 아저씨들이 집어 던져도 날 봐서 터지지 말고 꽁꽁 뭉쳐서 잘 있그래이..."했네
어제 부쳐서 오늘 받았을터인데 잘 들어 갔는가 아직까지 또 터졌다는 전화는 안 오네 그랴.
나도..그냥 이런걸 주끼대면서 속에 뭉친 것들을 풀어내는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