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방의 재발견
며칠 전 고스방은 지장사 스님을 태우고 대구 모처로 갔다.
스님은 회의에 참석을 하고 고스방은 밖에서 기다리는데 길 옆에 영업용 택시가 주르르 서있는 걸 봤나보다. 돌아가신 형 생각에 마음이 몹시 슬펐나보다.
나는 포도를 따고 손질하고 출하하고...밤이 되어 씻고 누우면 세상에 다시 등때기 바닥에서 떼기가 싫은데 나보다 나중에 자러 들어온 고스방이 내 옆에 누워 낮에 이야기를 한다.
대구 갔는데 길에 택시가 서있는 걸 보니 형생각이 나서 마음이 찢어지더라, 그 날(식목일) 우리가 감나무 심을 때 형보고 촌에 오라고 했으면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건데...하면서 주먹띠기같은 눈물을 연신 훔쳐내며 소리 죽여 우는 것이다. 어이고 딱하지를..
아즈버님 돌아가신거야 당신이 부르지 않아서 그리된 건 아니고 평상시 아즈버님이 건강이 안 좋으시면 음식이며 담배며, 커피까지..이런 걸 조심해야지. 우리가 그만큼 주의하시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그리 못하셨으니 아즈버님 책임이 더 커요..
나야 제 삼자니까 또 요따구로 냉정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형을 잃은 동생의 마음은 미어졌으리라.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고스방을 끌어 안고 눈물 닦아주며 토닥거렸는데.
그 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때 동생인 고스방을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한 방에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로 맞기도하고, 할머니가 빵을 하나 나눠서 큰 쪽을 아즈버님 먹일려고 팔을 엑스자로 해서 큰 쪽을 아즈버님 줬을 정도로 귀하게 키웠다. 아들 낳고, 딸을 내리 셋 낳았다가 다시 낳은 아들이 아즈버님이라 시할머니의 압도적 편애를 받고 컷다. 그렇게 큰 아들이 승질머리는 젤 못땟고 고집도 셌다. 고스방은 한마디로 천덕으로 자란게다. 착해가지고는 반항도 못했겠지. 안 봐도 비됴여
그런 옛시절의 앙금은 어디로 가고 대구가서 개인사업하다가 영업용택시하는 형이 안스러워 맨날 고스방은 걱정이였다. 자기도 영업용택시하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맨날 돈이 생기면 형 개인택시를 사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영업용하면서 형이 죽자 그것도 그리 못해준게 양심에 걸리는 것이다. 으이고 너무 착한 것도, 지 형제간 너무 생각하는 것도 병이여.
그렇게 한참을 울던 고스방이 울음이 잦아 들고, 가마히 보니 마누래는 이왕 끌어 안은거구...생각이 딴데로 튀었다. 나도 얼결에 연민이 흘러 넘쳐서 함 주고 나서.
한참 후에 가마히 생각하니, 괘앤히 내만 손해 본 기분이다. 에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