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9. 10. 16. 20:09

1.

한 해 농사 지으면 몸의 한 곳이 망가진다.

올해는 오른쪽 팔이 바부탱이가 되어 뒤틀지를 못할 정도로 아프다

고구마 캐서 콘티 박스 두 박스 담아 노란구르마에 실어 집까지 끌고 오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화근내 나는 입 안을 맹물로 헹궈내고 남은 물을 삼키면 물이 쓰다.

이렇게 죽을똥살또 캐오면 엄니는 아직도 캘게 남았냐고 물으신다.

하루에 한 골 아니면 한 골 반밖에 못 캐니 그녀르 고구마 캐는 일이 석달 열흘 가겠다.

날씨 추워지고 호박잎 무서리에 실쩍 삶긴 걸 보니 머잖아 딘내기(된서리)도 졸창간에 내릴터인데

그러기 전에 붉어진 끝물 고추도 따고, 어린 고추도 따야하고 고추잎도 따서 말려야하는데.

앞들 서송원 아저씨네 콩밭에는 콩이파리가 가을물이 기가막히게 들어서 그것도 좀 따서 삭혀야하는데..

지천에 일은 널부러졌고 하루해는 짧기만 하다.

김장 배추도 알이 차니 묶어줘야 하고 오늘 타작한 나락은 볕에 몇 날 말려서 갈무리 해야하고

콩도 골라 와야하고, 부탁받은 서리태 콩도 사서 부쳐야하고..

 

몸은 하나인데 눈들어 보는 곳마다 손이 가야하고 몸이 가야한다.

이렇게 종종 걸음으로 댕기다가 회관에 들어 할매들 누워 있는 곳에 나도 살짝 등대고 잠깐 누우면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좋은게 뭐가 있나...하는 마음이다.

 

2.

나락 타작을 하는데 콤바인의 탈곡부분에 기계 고장이 있었는가 콤바인 지나가고 떨어진 볏짚을 주워보니

벼낱알이 그대로 달린게 많다. 고스방은 고만 부애가 났다. 아는 자리라 승질은 못내고 인상만 떵 씹은 인상을 해서는 날 보고 그 낱알 달린 벼를 댕기면서 골라내란다. 나는 밥 적게 먹으면 적게 먹었지 그 짓은 못하요 하려다가 좀 누르러진 표현으로 고구마 캐 놓은 것 가져와야지 안 그러면 밤에 얼어서 다 썩는다고 썩는 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내가 홍길동인줄 안다. 고구마밭에도 번쩍, 콩밭에도 번쩍, 타작 논에도 번쩍.

새참만 갖다 엥기주고 낱알 붙은 볏짚 골라내는 고스방이 같이 줍자 할까바 줄행랑.

 

3.

저녁에 뜨끈한 물을 받아 놓고 목욕을 좀 하려는데 고삼 아들놈이 피엠피가 고장이 나서 자습불능 상태라며 일찍 왔다. 화장실에 갔다가 뜨끈한 물이 욕조에 받아져 있으니 제가 목욕하겠다고 냉큼 이야기한다.

고삼이 상전이라..그러라 해놓고 나는 샤워만 하고 나온다.

그 정도만 씻어도 살 것 같다. 이렇게 개운한 몸으로 책상에 앉아 편지라도 오랜만에 몇 통 써야지..

 

4.

약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