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바우
일전, 서울 간 김에 천호시장에 들러 막걸리와 족발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스뎅 주발에 가득 따뤄 마시는 막걸리가 맛이 참 좋습디다.
한 때는 소주가 아니면 아니 마시겠노라 그래도 술이라면 한 잔을 마셔도 쇠주지! 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었는데 막걸리도 마셔보니 괘안았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번씩 트림할 때마다 소 되새김처럼 솟구쳐 올라오는 막걸리의 추억, 아! 쩔게 만듭디다.
한자리에 앉아 같이 마시던 마석의 서당선생님이 취기가 조금 오르자 가방에서 뭘 뿌시럭뿌시럭 내놓습니다. 누가 옆서를 주더라고. "나는 쓸 일이 없으니 당신 가지세요"하고 건네줍니다. 엽서 재질이 좋아서 볼펜 글씨를 받아주는 품이 제법 넓습니다. 나도 이런 품 넓은 종이재질의 사람이 늘 되고 싶지요. 그런데 한번씩 기름종이처럼 무엇이든 되물림치며 팍팍하게 인상 구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낮에는 금계리 경로당 준공식에 가서 소주 두 잔 마셨다고 용암 누룩바우 지나오는데 산천이 기막히게 이쁩디다.
그것들도 이쁠려고 이 가을 노력을 했지만 그 보다 내 마음이 술 한잔 하니 이뻐져설랑...ㅎㅎ
누룩바위 박운식
김시천
충청도 산골 마을 영동군 황간면 누룩바위 사는 시인 박운식 형은 농사꾼이다. 누룩바위에서 나서 자라고 평생 누룩바위를 벗어난 적이 없으며 농사 말고는 아는 일이 없는 그가 쓰는 시 또한 무공해라서 어디 그럴 듯 하게 꾸민 데도 없으며 잘난 척 으스대는 일도 없다. 그저 그가 심어 먹는 들깨나 참깨를 닮았고 가끔 거나해서 권하는 앞 도랑 참붕어 매운탕 맛이 난다. 그 착한 양반 요 몇 해 몸에 해로운 농사는 안 된다며 풀과 씨름하면서 농약 안 치는 유기농법으로 포도 농사지었으나 때깔 좋은 것만 찾는 도시 사람들 야속하게도 무농약 포도 알아주지 않는다며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아대더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포도라는 제목으로 밤새 시 한 편 써서 포도 상자에 담아내는데 그런 그이 앞에 가면 세속에 찌든 내가 거울처럼 훤히 보여 몸 둘 바를 몰라 인사도 그저 건성이다. 형님, 벌써 감이 익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