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그냥..

황금횃대 2009. 11. 17. 21:31

1.수능을 치른 아들놈은 학교 가는데 차비 이천 사백원을 들여 왕복하면서 학교 가면 탁구나 치고 온단다

정말로 할게 <아무 것도> 없단다. 책을 좀 읽지..하는 내 말에 안 그래도 하도 할게 없어서 책을 좀 읽을까 생각했단다. 비쩍 말라 보리껍데기같은 놈. 시험은 개떡같이 봐 놓구도 뭘 어쩔 수가 없는 시기라 <지붕뚫고 하이킥>을 피엠피에 내려받아 보면서 흠, 험, 흐흠, 흐헉,..하면서 뉘앙스가 다른 웃음을 웃고 있다.

걸구칠 것 없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야야, 달력 좀 바바.

 

2. 지난 일요일은 그 추운 새벽바람에 보라매병원에서 벽제화장터까지 달렸다.

태어나서 나는 몇 번째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냐...하고 손꼽을 여유도 없이 네비년은 운전수 고스방을 다그쳤다. 이백미터 전방에서 좌회전, 삼백 미터 전방에서 두시 방향으로 우회전... 나는 옆좌석에 앉아서 전신의 결림을 짜집기하고 있다. 지난 밤,서너 시간 택시 앞좌석에서 의자 젖히고 네 시간쯤 잤나? 자다깨다 뒤척이다 바람소리에 눈뜨다 추워서 오그리다, 다리가 저려 기지개를 켜다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내렸다 모로도 누웠다 뒤집어도 보았다...그러다보니 서울의 한 귀퉁이에 새벽이 왔다. 퍼뜩 병원 화장실에 들러 고양이 세수를 하고 칸칸이 장례식장으로 연결된 젤 구석 자리에 가니 둘째 시고모님의 마지막 제사가 지내지고 있다. 발인이다.

 

3. 자...고태순 여사는 이제 여든 두 해의 생을 마감하고 이 년전 팔순 잔치때 찍은 사진을 부분확대한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대신하고 있다. 영정 사진은 언제나 사망한 시점보다 젊은 사진이다. 아무라도 영정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하루 아니면 이틀..이렇게 살다보면 영정 사진이라고 찍어 두어도 이 삼년은 젊은 얼굴이게 마련이다. 하물며 오랜만에 화장까지 하고 팔순 잔치에 나간 사진이고보면...

푸른 옥빛의 한복에 하얀 저고리동정이 저세상으로 다시 성공적으로 건너갔다는 'V' 사인같다.

 

4. 고모님의 큰아들은 육십년을 살면서 외갓집과의 띄엄띄엄한 추억을 고스방에게 이야기한다. 술 못먹는 걸 큰아들은 알았는가? 소주 한 잔 권하지 않으면서 어린 시절 외갓집과 외삼촌 외숙모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집이 못살고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외갓집이 자기집을 좋아하지 않았다는것. 죄는 아버지가 더 많이 지었는데 새삼 아들은 외갓집이 그걸 싫어 한 것에 더 원망을 한다. 핏줄은 어쩔 수 없는개비다.

 

5. 돌아가신 시고모님이 큰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도 못하고 있는데 친정인 우리집으로 그 옛날 연락이 왔다.

아이를 낳고 다 죽어간다는 기별이였다. 즉시 어머님의 시어머님, 곧 시고모의 친정어머니이 할머니께서 막내 아들(작은 아버님)을 데리고 버선발로 서울로 올라갔다. 가보니 기도 안차게 사우란 놈은 넘의 여편네랑 살림을 차렸고 자기 딸은 못 먹어서 앉은뱅이가 되어 오늘만내일만 하더란다. 기골이 당찬 시할머니는 그길로 막내아들에게 죽어가는 누이를 업으라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이년 동안 대소변 받아내며 구완을 했다. 그 구완의 최종책임자는 우리 시어머님이였다.

"아이고, 앉은뱅이가 되어 펴지도 오그리지도 못하는 시누를 눕혀놨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시어무이가 어데서 발이 새파란 오골계를 구해왔네. 닭터래기째로 모래집째로 닭모가지 비틀어서 늙은 호박 뚜끼 따서는 그 속에 집어 넣어 종일 소주를 내렸어. 그걸 먹고 시누가 똥을 누면 나는 그거 치우고나서 비우가 상해서 그날 밥을 못 먹어. 하루에 아침 한 끼만 먹고 살았네. 그걸 시 마린가 니 마리 해먹고 나니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앉어." 내가 다 살것 같데. 그 길로 차츰차츰 깨어나서 살아 났어. 어이구 그 세월을 말로 다 어떻게 해"

 

6. 시고모님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안방에 가서 아버님 어머님께 고하니, 아버님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고 어머님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으시다가 "어이고..오, 그걸 살다 갈라꼬 그렇게 고상고상(고생고생)을 하고.."  우리 모두는 되짚어보면 채 백년도 안 되게 살고 갈라고 그렇게 지지고 볶는다.

 

7. 벽제에서 몇 웅큼의 재로 변하신 시고모님. 나는 저번에 아즈버님 화장하는걸 보고는 마음에 상처가 커서 이번에는 현장에서 조금 비켜나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자를 맡겨놓고 내려와 인삼설렁탕을 먹고 황태국을 먹으며 깎두기를 수북히 담고 배추 김치를 한 보시기 더 담아서 간다. 후루룩후루룩 설렁탕 속에 소면은 퍼져도 나름의 탄력을 유지하며 상조회사의 제복을 입은 여윈 아저씨의 입으로 물결치며 빨려 올라간다.

먹고 사는 일.

 

8. 처음에는 기차표를 예매하라고 해서 발빠르게 예매를 했더니 고스방이 차를 가지고 가겠단다. 예전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맵피~~하고 시그널 함성을 외쳐대는 네비년을 믿고 고스방은 과감히 보라매병원을 찾아가겠단다. 밤 11시 반에 도착한 병원은 얼마 전의 화재를 핑게로 여전히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장례식장을 찾아가는데 서울은 서울이라...장례식장도 그 규모가 촌구석하고는 확연히 틀릴 뿐더러 거기를 꽉꽉 메우고 있는 상가집 현황 또한 눈돌아가는 광경이라. 참말로 서울은 서울이데이...어느 구석에서  매일 이렇게 나고 죽고 하는 일이 있어서 어딜가도 만원사례이니..

 

9. 벽제의 끝을 찍고 서울 외곽고속도로를 타고 구간구간 통행료를 지불하면서 촌으로 다시 내려온다.

맨날 댕기는 사람들은 정기권을 끊어 할인을 받고, 어쩌다 가는 촌놈 고스방은 주머니에서 열나게 천원짜리며 동전을 끄집어내서 건네준다. 에이 도둑노무 짜식들..그러나 금방 그 말한게 미안한지.."시내로 들어오면 신호 대기 기름값만 해도 그만큼 되겠지? "하며 도둑노무 짜식들하고 금방 화해를 한다. 고스방은 오랜만에 집에서 먼곳까지 여편네와 같이 나온게 너무 좋다. 여태 살면서 여편네랑 둘이서 여행을 다녀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장례식 가는 길이지만 못난 여펜네와 단 둘이 동행이라..고스방은 총각처럼 들떴다. 기차표를 물르고 일부러 차를 끌고 간 것도 다~아 상순이하고 둘이 가는 거라 일부러 그랬다. 그런건 이야기 않해도 안다. 고모 장례식은 장례식이고.

 

10. 집에 와서 싸악 씻고는 옷을 갈아 입고 고스방이 또 택시 일을 간다. 밤에 들어와서는 서울 갔다 왔는데도 일당을 팔 만원을 벌었다고 므흣해한다. 또 고스방은 그게 다~~아 돌아가신 고모님이 점지해줘서 그렇게 돈을 벌었다고 한 번 더 고모님께 감사한다. 우리 고스방 아니랠까바..

 

11. 집,

     따.뜻.한. 방. 바.닥.에 등때기대고 누우니 세상에 이 보다 편한게 없다.

     요대기가 낡아도 좋다.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 뿐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