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9. 12. 9. 11:00

어제 종일 제사 음식 준비해서 차려내고 나니 만정이 똑, 떨어진다.

이제 설날 차례 전에는 조상님 밥상 차릴 일이 없다.

아침에 제기 씻어 건져 놓고 허리를 펴니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몸의 찌부덩함이 느껴진다 거기다 날씨도 구리구리..

 

제사상에 올랐던 까놓은 귤을 몇 개 들고와 자판을 친다.

이 귤은 제주도에서 바로 따가지고 온 귤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증손자며누리를 너무 잘 봐서 밥상에 이틀 전에 나무에서 딴 귤을 드신다 음하하하.

증조부는 밤새도록 귤껍데기 수분만 드시고 가셨나 귤껍질이 말라서 파삭파삭하다.

울 아덜놈은 이런 귤 먹기 싫다하지만 나는 껍질이 마른 귤을 좋아한다.

 

제주도 가서 둘째날 성판악코스로 백록담까지 올랐다. 그놈의 시간제한 때문에 얼마나 급하게 산을 올랐던지..나무며 돌이며 새소리며 느낄 여가도 없이 앞만 보며 올랐다. 그리고 하산.

산이 높아 하산길도 만만찮다. 오른 시간대와 맞먹게 하산 시간도 그렇게 걸렸다. 지루하고 지루한 하산길.

서른 두명이 갔는데 딱, 반 만 산에 올랐다. 16장의 정상산행인증서를 가지고 오니 산에 오르지 못한 난곡리 이장님이 "저거 꼴비기 싫으니 불에 싸질러라"고 농담을 했다.

 

저녁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전부 반 절름발이가 다 됐다. 옷도 갈아 입지 말고 바로 사우나로 가라고 기사가 친절히 말해준다. 관광버스도 황간 버스를 배에 싣고 가서 제주도 관광 온 사람들이 우리 버스를 전부 한 번씩 더 쳐다봤다. 이 관광버스 앞 유리 위쪽에는 <꽃을 든 남자>라는 버스 닉네임이 커다랗게 쓰여져 있다 ㅎㅎ

어지간한 부자 아니면 이렇게 버스까지 실어서 제주도 관광 올수 없다나?

 

대충 샤워를 하고 거기서 주는 찜질방 패션으로 갈아입고 안마실에 들어가니 먼저 씻고 온 할아버지 이장님들이 일렬로 주욱 누워있다. 안마는 산에 올라갔든 안 갔든 다 받자고 했다. 더러는 외국가서 한 번씩 안마서비스를 받아 본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안마라고는 머리에 털나고 첨인지라...좁다란 간이 침대 위에 올라가 누웠는것도 생경하고 어색하기가 그지없다. 거기다 아저씨, 할아버지들은 모두 여자안마사가 따라붙고 여자 이장은 둘 밖에 없었는데 거기는 총각 둘이 따라 붙었다. 내 옆에 여 이장님은 나도 여자가 해 줬으면 좋겠다고 실쩌기 앙탈을 부리셨지만 총각들이 더 힘좋다는 말로 패스.

 

침대에 엎어져 누으라해서 누으니 얼굴이 들어 가는 부분은 동그랗게 구멍이 파져 있고 거기다 수건을 얹어 얼굴을 놓았다. 어깨부터 목, 견갑골, 척추 골반..다리 발바닥..나중에 돌려 눕혀서는 종아리, 팔...뭐 이런 순서대로 안마를 하는데 나는 어찌나 온 전신이 누를 때마다 아픈지 외마디 비병을 끊임없이 질러대었다.

하도 아프다니까 총각이 좀 살살할까요? 한다.

 

옆에 이장님은 벨로 아프단 소릴 하지 않는데 몇몇 남자 이장님들도 아구아구 소리를 낸다. 여름내도록 농사일에, 무거운 콘티를 들고 왔다갔다했지, 그렇게 뭉친 어깨를 부부가  앉아 찬찬히 서로 등 두드려주며 풀고 산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뻗뻐드름한 육신은 가하는 힘에 속수무책으로 아픈 비명만 질러댄다.

나는 문득 아픔보다 서름이 밀려왔다. 아모 것도 설울 것없이 히히호호 하는 날라리 생을 사는데 말라꼬 그 때 대책없는 눈물이 났던가. 왈칵 뜨거움이 목젖을 넘어 달구똥같은 눈물이 순식간에 수건으로 흡수되었다.

 

그래그래, 너 힘들게 살아왔다. 너보다 힘들게 산 사람은 백사장 모래알보다 많지만, 니가 감당해야하는 만큼의 삶은 잘 살아왔다. 안마사가 아모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눌러대며 풀어내는 근육에 그런 위로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아 나는 공연히 서릅다. 서릅다못해 헤푸게 눈물이 났다. 나는 이렇게 나와서 눈먼 기분으로 안마라는 호사를 누려보지만 그런거 저런거 한 번도 못해보고 산 고스방이 생각났다.

 

옛날 잔치집에 간 거지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즈그집 식구들 배곯는 생각에 먹는 기쁨보다 식구들이 불쌍해 눈물이 났다지만...나도 그 짝인가. 따지고 보면 그것만도 아닌데.

안마를 받으며

아프기도 아프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먹먹함에 나는 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사람이 션찮다보니..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