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밤에 잠을 깼다
느낌으로는 새벽같아 일어나 불을 켜고 코 골고 불 불며 잠자는 고스방을 힐끗 쳐다보고는 잠옷을 갈아 입는다. 어제는 날씨가 궂어 방에다 빨래를 널었다. 좁은 방구석에 빨래 건조대, 어지러운 책상, 그리고 내 바느질 호작질꺼리까지 복잡다. 그래도 고스방은 방에 들어와 저 누울 자리만 있으면 방구석이 구신 떡당새기같아도 말을 안한다. 그거 하나는 정말이지 평생 신통하고 고마운 일이다. 빨래를 걷어서 개어놓고 건조대를 소리 덜나게 접어 창가에 세워두고는 시계를 보니 두시 이십분을 지나고 있다 이 시간에 잠을 깨다니.
나도 이제 늙는게야. 아니아니아니아니 늙는거야 예전부터 진행되어 왔지만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한 숨 푹 잤다고 생각하고 저절로 눙깔이 반짝하고 눈이 떠지는 시간이 두시 몇십분이라면 맞는 말이야. 처연히 스텐드 불 아래 앉을뱅이 책상 앞에 앉아 밤의 고요를 짚어본다. 밤이래야 사람만 잠을 자서 고요하지 대지는 그렇지 않다.
하늘도 조용치를 않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옥상엔 뭔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바람 방향에 따라 어지럽다.
암수내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간간히 섞여 있다. 내일은 동네 총회를 하는 날이라, 일년 동안 출입한 금전출납부 정리와 영수증 대조, 통장 잔고를 확인하니 세시 사십팔분이다. 다시 불을 끄고 고스방 팔을 베고 누으니 첫 닭이 운다. 닭은 이때쯤 아침을 시작하는구나.
이즈음 잔걱정이 들어찼다. 내 아는 이는 옥탑방을 하나 얻어 인문학의 갈피를 자기 관점에서 정리하는 책을 쓴다고 용쓴다는 편지를 보내왔는데 나도 그에 부응하여 자잘한 잔걱정으로 가늘게가늘게 이어져온 여편네 역사를 정리해야하나 어째야하나 하는 걱정도 덧붙여 해본다.
상민이는 이번 방학에는 반드시, 기필코, 우짜든동 알바를 한 번 해 보겠다고 대전 빵공장이며 식당을 알아보다가 오늘은 외갓집 근처 돈구이집으로 면접을 보러간단다. 즈그아부지는 그나마도 못하게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하는게 낫지 않는가..하는 권유를 해보지만 젊은 날에 알바 한 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경험이다.
알바몬이라는 사이트 들어가 일자리를 찾는데..무슨무슨 빠가 젤 많다.
생전 처음 내놓는 일이라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 어딜가도 눙치며 임기웅변이 없어. 꼭 즈그아부지 같이 콩 심은데 콩 나야하고 팥 뿌린데 팥 나야하고..그래서 걱정이지.
고스방은 귀에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 번씩 죽상을 하고는 신경질을 부리지..아들놈은 원서 냈다고 그 동안 게임 못한거 한다구 주구장창 컴 앞에 앉아 게임만 하지. 머리카락을 지저분하게 길어서 상투를 틀어도 될만큼 길었는데도 아깝다고 깎을 생각도 않지, 그걸 보면 즈그 아부지는 꼭 한 소릴 하지. 아유 내가 돌긋어.
내 소망같아서는 그냥 템플스테이같은데 들어가서 고요히 나를 좀 가라앉혔으면 좋겠다. 무료하게 심심하게 내 속에 흘러가는 것에 참방참방 손 담그기 놀이나 하믄서...일 주일 정도 쉬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