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또 한 해가 가는군요...

황금횃대 2009. 12. 29. 23:10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새 달력을 비릉빡 못에 새로 걸었습니다.

글자가 커다랗고 음력이 밑에 따로 기명이 된 달력입니다 대개 농협달력이나 주유소 달력, 신협 달력이 여기에 해당 되겠습니다. 지난 말날, 그러니까 섣달 스무이랫날엔 메주를 쒀야 하는데 동네 총회한다고 그냥 지나갔어요. 메주 몇 덩어리 매달아놔야 겨울 일이 끝납니다.

 

오늘 딱 두부 남은 달력을 부쳤습니다

옛 애인과 현재 애인에게 ㅎㅎㅎ

옛날 애인은 내가 간간히 보내 준 편지를 죽어서 무덤 보장품으로까지 가져 간다고 맨날 내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던 놈이 요샌 전화도 잘 안합니다. 그래서 에라이 나쁜놈, 내가 보장품이나 하나 더 보태 주마 하는 심정으로 인쇄 달력을 보냈습니다. 옛날 그 놈이 내게 다이어리를 하나 사서 선물로 줬는데 나는 그걸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거기 앞 표지 주머니에는 엔화로 일만 엔이 봉투에 들어 있고 또 며칠 전에는 현금 십만원을 넣은 봉투를 넣어 두었습니다. 거기 속지에는 내가 받은 선물 목록들을 차근차근 다 적어 놓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받은 것을 다 갚고 죽을 수 있을라는지 몰것습니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았어요.

김광섭 시인의 시인이란 시 첫 연처럼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는 주신 대로 받았다가.

 

옛날 옛적에는 이 시를 다 외웠었는데 이젠 그것도 까먹었어요.

 

이장 회의 끝나고 여섯시 조금 넘어서 우천리 사슴 농원에 가서 이장단 망년회를 하고 조금 전에 왔시요

이놈 저놈(아, 이장님들 죄송합니다 놈이라해서) 건네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먹었더니 팽 돌아요

그동안 술을 잘 안 먹었어요 서방은 어지럽다고 그러지 자슥놈은 알바 구한다고 동당거리지 또 한 놈은 대학원서 써 놓았지..그냥 내가 좀 조신하게 있어줘야 그런 것들이 까탈을 안 부리고 잘 돌아 갈 것같은 느낌이였어요, 그렇게 참다참다 오늘은 그냥 막 마셨세요. 배도 촐촐한데다 소주 한 잔 넣으니 으하~~ 맛이 조옷습니다. 1인 반주자까지 불러서 소위 말하는 유지들 기관장들까지 다 와서 노래 한 자락하고 술을 마십니다.

오늘 다 마셔 조질듯이 마셔댑니다. 밥상 밑으로 빈 소줏병이 날라르미 줄을 섭니다.

 

슬쩍 슬쩍 바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나는 정예부대 몇 남은 것 보고 시내로 나오는 차가 있어 타고 왔지요

그 사람들은 밤새도록 부어라마셔라 할 지 모르겠어요. 내일 되면 누가 어찌됐다는 소문이 좁은 촌구석에 확 돌겠지요. 나는 밖에 나와서 이리저리 걸었어요. 그 식당이 농원형태로 되어 있어 상당히 넓어요. 마당을 왔다 갔다하면서 술을 깨웁니다. 술은 오랜만에 내 핏톨을 돌아 다니는 감회가 남다른지 쉽게 깨어나질 않고 계속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을 왔다갔다하며 내 혈관의 구석구석을 훑고 다닙니다.

술김에 현재 애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도 바쁘십니껴?"

"그렇지요. 바뻐요"

 "올해는 서로가 바빠서 자주 보지도 못했네요'

" 그래요.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사는 일이 그렇죠 뭐"

 

 

참 슬픈 일이지요 사는 일이 그래서 애인 얼굴도 자주 못 보다니요.

그래도 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는 건 애인보다 중요하니까 ㅎㅎㅎ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마당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사윈 잔디가 빳빳하게 내 발바닥에 저항을 합니다.

자근자근 밟아주지요.

애인은 날더러 책을 많이 읽으라 하는데 나는 이미 책에서 멀어졌습니다.

책을 안 읽으면 인생이 자꾸 공허해 진다고 또 이야기를 해 줍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한 해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은 건 맞는데요 뭐 땀시 그렇게 살았으까잉? 하고 내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맨날 200%로 살았다고 뻥을 쳤는데 올해는 그것도 못하게 됐습니다. 양심에 좀 걸립니다.

열심히 연애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구석을 빤닥빤닥 윤나게 닦고 산것도 아니구...

아이 시발,,,

대충 살아 버린 한 해는 아수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