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
어제는 저녁밥 한 숟갈 얼른 국에 말아 마시듯 먹고는 서송원 화자 신랑한테 컴퓨터 갈케주러 갔지를. 해가 많이 길어졌어. 여섯시 버스를 불나게 뛰어가 타고 가면 딱 6분 뒤에 동네 들어가는 한길가에 내리게 되거등. 거기서 내려선 동네 집들이 있는 곳까지 이 십분정도 걸어 들어가. 길 가으로 사과나무 포도나무가 줄 지어 있고, 밭 둑너머 집에서는 저녁 난방을 위한 불때기가 시작되었는가 집집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지. 해가 어슷 지고 난 뒤에 촌길을 타박타박 걸어보라구 마음이 얼마나 묘해지는가. 이 발걸음이 지금 어데 오갈데도 없이 정처없는 발걸음이라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싶지..그러나 지금 나는 그렇지는 않아 친구집에 가는 길이니까. 거기서 할 일도 있고, 또 그 일이 끝나면 돌아 와 쉴 내 집도 있잖어. 한편 그 외롭고 고즈넉한 풍경 사이를 찬바람 맞으며 걸어가는 나를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다행이다, 다행이다했지 돌아갈 집이 있다고.
2.
오후에는 명절에 먹을 새쌀을 찧어왔네. 쑥다리 방앳간 아저씨 차 불러다 그물망으로 된 나락푸대 여덟개하고 매상푸대에 담은 나락푸대 하나랑 도합 아홉 푸대를 싣고 갔어. 아저씨는 미닫이 출입문을 힘차게 밀어 부치며 나락가마니를 떼다가 도정 기계 앞에 자빨트려놓고 지퍼를 쓰억 열어. 그러면 한 아구리 꽉 차게 담겨 있던 나락들이 와르륵 쏟아지지. 뉘, 돌 고르는 기계를 지나고 여기저기 올라갔다 내려갔다 쿵쾅쿵쾅 피댓줄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동안 나는 아저씨집 뒤꼍에 있는 하우스 안에서 호매이자루 하나 찾아내서 혹시 냉이가 났나..하고 포도밭쪽으로 걸어갔지. 호매이쥔 손으로 뒷짐을 지고. 시방 남녘의 남녘 어디쯤에 와 닿았을 봄을 생각하지. 바람이 불면 날씨야 아직 쌀쌀허지만 눈꺼풀 위에 토닥토닥 떨어지는 빛살은 뉘앙스가 좀 다르지. 그런걸 도시 사는 사람들은 참 알기 힘들겨. 맹 코로 숨쉬는 공기가 하루하루 차이 나는 걸 촌구석에 오래 살다보믄 저절로 알게 되야. 냉이는 날이 차와 자주색으로 얼었네. 땅도 위쪽 일센치 깊이 만큼만 호미대가리가 들어가지 그 밑에는 꽝꽝 얼어 힘주어 내리쳐도 대가리가 튕겨. 봄은 멀었나....
나락을 찧어서 차에 싣고는 다시 집에 부려놓고 떡방앳간에다 가래떡을 빼 달라고 쌀 한푸대는 내려놓았지.
이미 가래떡이 뽑아져 나온 것은 기다랗고 날씬한 몸을 뽐내며 꾸덕꾸덕 굳어가고 있네. 가난한 촌구석에도 이제 방에서 도마소리 또닥또닥 내며 가래떡을 집에서 써는 사람이 드물어. 명절이 오면 칼을 시퍼렇게 벼려주던 영감들이 세상을 떴거나 아니면 늙어가는 할망구 애껴애껴 쓰느라고 영감님들이 떡써는 수공비까지 선뜻 내주었을거야. 사흘 뒤면 가래떡은 떡국으로 가지런히 썰어져 푸대에 담겨져 배달이 되겠지.
옛날 어릴 적에, 자다가 요강에 오줌 누러 새벽에 일어나면 엄마가 하얀 이불호청 보자기를 웃목에 펴놓고 가래떡을 썰었지. 적당히 굳은 가래떡이 아버지가 갈아 준 칼에 또각또각 하이힐 딛이는 소릴 내며 썰어져 나왔지를. 맹 마지막 꽁대기를 연탄불 철판 뚜껑 위에 얹어 놓으면 노릇노릇 구워졌지. 그걸 먹으며 행복했어. 아이들 넷, 여덟개의 눈들이 볼쌀 소쿠리 드나드는 쥐새끼처럼 반들반들 빛을 내며 연탄 뚜껑 위에서 구워지는 가래떡 꽁대기를 지켜보았드랬지.
또 더 옛날 옛날 돌아가신 작은 아부지 총각 때, 삼촌은 범어동 엿공장에 다녔어. 지금 같으면 삼촌 일하는 공장에 아이들이 놀러갈리 만무하겠지만 우리는 가끔 삼촌 공장에 들러 엿을 먹었다. 삼촌이 그릇에 누런 물엿을 한 그릇 떠와서 나무젓가락을 주며 둘둘 말아서 엿막대기를 만들어 주었지. 기실 그 당시는 엿장사들이 많아서 하얀엿도 똑똑 분질러 팔았지만 갱엿도 다라이에 담아 다니면서 나무 막대기에 둘둘감아 팔기도 했어. 갈증나게 사먹던 것을 삼촌 공장에서는 속이 다리도록 먹었어.
엿을 좀 얻어와서 가래떡을 엿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었지. 꿀맛이란, 진짜 꿀맛보다 더 맛있는 맛이 아닐까.
쌀푸대 갖다 놓으면서 실그머니 한 말 더 얹어서 갖다 놓는다. 며칠 뒤에 친정 동생이 선물용으로 주문한 곶감을 가지러 우리집에 올 때 떡국 한 말 썰어서 얹어 줘야지. 올케가 알바하는 상민이 뒷바라지 한다고 애먹었고있지. 기실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지..하고 속편한 말을 하는데 객식구 하나 더 있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잘 알고말고.
3
또 등록금의 계절이 왔다. 고스방은 요즘 세밑이라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죽상을 하고 와서는 그간 열심히 설명하고 받아 온 생활비에 대해 태클을 건다. 안하던 내 가계부 검열까지 한다. 이십일년을 살아도 십원 한푼 생활비가 인상된게 없는데. 그러면서 식비로 그것도 모지랜다고 말하니까 뭘 그리 뻑적지근하게 먹는데 그 돈이 다 들어가느냐고 눙깔을 부라린다. 내가 한 달분 식비 지출을 따로 계산해서 보여주니 아무말도 안한다. 말 할게 뭐가 있나. 내가 십원 한푼 들어가는 것도 가계부에 딱딱 적어 놓으니 그 계산 고대로 계산기 두드려 내미니 할 말이 없는게지. 딱 자기가 내놓는 생활비의 배가 들어가니. 그것도 철철히 대량으로 사는 양념값이나 제사 비용 이런것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고스방은 내가 이장일 맡아 하면서 들어오는 월급 280000을 자기 어려울 때 좀 내놓지 않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난 달 난방전기요금만해서 사십만원 육박해서 조금만 추워도 보일러 불을 뜨끈뜨끈하게 올려 놓는 어른들에게 이야기 좀 하랬더니 그건 안 하고 가만히 있더니 엄한 날 가지고 돈을 허투루 쓰나싶어 한점 티끌도 없는 내 가계부를 샅샅히 검사를 한다. 속으로 부아가 화악 치민다.
그래서 고스방이 들어면 껄끄러울 옛날 이야기를 자동소총 난사 하듯 갈겨 버렸다. 그러고는 "그리 힘들면 이번에 애들 학비는 내가 낼께욧. 빚을 얻어서라도 내가 다 해결하고 평생 넘으집 일해서 갚지뭐..다다다다."그렇게 쏘대는데 옛날 시집와서 돈 오천원 얻을 때 받은 구박이 생각나 고만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이여. 총은 내가 쏴놓고 눈물 타령은 내가 하네. 맘 약한 고스방.. 대번에 수구리.. 일격에 제압. 슬그머니 가계부를 내쪽에다 밀어 놓는다.
그 속에는 식비 말고도 내가 짬짬히 부어 넣는 푼돈 적금 명세가 있고, 또 호작질 하느라고 질러 놓은 스템프
구입비용이며 퀼트 부자재, 그리고 친목계 계금명세...등등..이 서캐처럼 숨어있다.ㅎㅎㅎ
4.
나이가 들면서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축복이다. 여편네가 깨알같이 써 놓은 일기장을 펴놓아도 돋보기가 없어서 잘 안보이니 다행이고, 가계부 귀퉁이에 마누래만 알아 묵게 써놓은 쉰살 축하금 명목인 적금 붓는 것도 쉽게 인식하지 못하니 분란이 없다. 이렇게 늙어가며 알아도 모르는 척, 봐도 못 본척, 살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