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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을 잃은 운금이^^

황금횃대 2010. 3. 3. 20:39

아들놈을 낯선 전라도 땅에 떨궈놓고 온 고스방은 병이 났다.

삼일절날 오후에 비누,치약에 슈포타이 한 통에 한말들이 피죤통을 거꿀로 치들고 한되들이 생수통에 덜어가기까지 하는 아들놈 이삿짐을 옮기면서 벌곡휴게소에서 오후 새참을 먹을 때까지는 좋았다. 거기서 기분좋게 고스방이 이만원을 꺼내서 아들놈 돈까스와 비빔밥등을 사멕이며 이게 꼭 자슥에게 사멕이는 마지막 밥이라도 되는냥 혼자 비장했었다. 에비 옆자리에 앉아 돈까스를 썰고 있는 놈에게 고스방은 자기 비빔밥도 덜어주고 두어 젓가락 담겨져 나온 상민이 짜장도 젓가락으로 냉큼 덜어 아들놈 접시에 얹어주었다. 급기야 늦게 가지고 온 내 라면사발 안에 어묵 두개를 낼름 건져다 또 아들놈 접시에 갖다 놓는 것이였다. 참내..짐싸서 집 나오기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병조 대가리를 깎고 가느냐고 전화통에다 고래고래 괌을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조선에 둘도 없는 친절한 운자씨가 되었다.

 

익산 톨게이틀 지나고 아들놈이 덮을 이불을 하나 사서 실으니 작은 차는 빵빵해서 터질지경이다. 원광대 앞 하숙촌으로 겨우겨우 차들을 피해 집 앞에 가서 차를 세워 놓고는 아들놈 방을 가보고 나오더니 얼굴이 슬프다 못해 흙빛이다. 어이구...서글프지. 상민이도 입학식날 병조 따라 갔다가 오더니 "엄마 방이 있잖아..말로만 듣던 코딱지 만한 방이였어. 정말 놀랬어!"하고 말했는데 병조 에비는 아조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좁은 방에 문을 열면 의자를 비켜야하고 화장실 문을 열면 그 앞에 앉아 있던 상민이가 일어나야 문이열리고..이런 지경이니 옷이니 컴퓨터니 박스 몇개에 이불보퉁이 풀어놓으니 작은 방은 발 딛일 틈이 없었다. 슬그머니 고스방이 밖으로 나간다.

 

우리는 이십여년을 촌구석 집에서 붙박이 장롱처럼 살았다. 어데 집을 옮긴적도 없거니와 이렇게 많은 짐을 들고 이동한 적도 없었다. 나는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둔 서랍장에 아들놈 옷을 챙겨주고 한 자리에 앉아 뱅뱅돌며 팔 방향만 바꾸면 방 한칸 다 닦아내는 작은 인형집같은 방이 신기해서 실쩌기 저혼자 신바람이 나려했다. 여기다 티슈통을 올려놓고 자취인의 천국 그린마트에서 산 이천오백원짜리 플라스틱 빗자루를 비릉빡 못에 걸면서 응근히 신이 났다. 내가 신이 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혼자서 씰고 딲고 하는 사이 병조는 컴퓨터를 연결하고 이불을 깔았다. 혼자 자면 딱 맞는 방. 이제 병조는 여기서 일년을 지내야한다. 한참 뒤에 고스방이 들어오는데 눈가에 눈물이 줄줄 흐른다. 방이 어둡다고..또 마음에 걸린단다. 그거야 비오는 날 저녁 여섯시가 넘었으니 어두울밖에..여기저기 둘러 볼 것도 없는 좁은 구조를 휘둘러보던 고스방의 큰 눈에는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공연히 우릴 보고 우락부락한다. 그렇게 짐 정리를 해놓고 일곱시쯤 주인 할머니한테 가서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할머니한테 말을 못한다 목이메여서. 나는 아들놈보다 우는 고스방 때문에 목소리가 떨린다. 할머니가 "일주일만 지나면 전부 적응해서 잘 지낸다고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킨다. 아들놈의 까다로운 입맛, 많이 안 먹는 식성, 빌빌 거리는 몸체, 이런 것들이 모두 걱정이다. 나는 병조에서 손을 흔들며 잘 지내라면서 앞 좌석에 탔는데 먼저 탄 고서방은 빽밀러로 병조가 파커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웅크리고 물끄러미 제 에비 차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았나보다...하숙집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고스방은 내도록 훌쩍거리며 운다. 거의 논산 다 와 갈때쯤 울음을 그쳤다. 예의 "그 시발노무 학교는 이렇게 먼데서 왔는데도 기숙사를 주지 않는다"고 욕 한마디 했다. 기숙사에만 들어가도 이렇게 속상하진 않았을텐데...

고스방은 금강휴게소에 차를 세워놓고 저녁도 안 먹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하는 딸과 여편네 생각을 그제서야 하고는 버터구이 감자 두 통을 오줌누고 사왔다. 머리가 아프고 몸살기가 으슬으슬 생기기에 금강휴게소에서 상민이를 앞좌석에 보내고 내가 뒷좌석에 누워있었더니 딸래미가 조잘조잘 거리며 아빠에게 이야길하고 감자를 먹으면서 조금 경쾌해졌다. 그래..먹는 일이 크구남..^^ 사람이 슬픈데 배까지 고프면 더 힘빠지는 벱이야.

아들놈 하숙방에 떼놓았다고 저렇게 울면 딸래미 시집 보내는 날에는 대성통곡을 하지 싶다..

 

아홉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을 하고 피곤한 고스방은 열한 시가 못되서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새벽 다섯 시 반, 뭔가 옆에서 훌쩍훌쩍 우는 기척이 있어 잠을 깼는데 으이구나...고스방이 잠이 깨어 어제 빽밀러에 박혔던 아들놈 생각하며 또 울고 있다. 한참을 안아주며 다독거리니 울음을 그친다. 에궁 언제부터 저렇게 아들놈 생각하는 정이 깊었나..

 

오늘 고스방 핸드폰 통화내역을 보니 온통 아들`에게 건 전화뿐이다. 병조는 지난 연말에 그 난리통을 겪으며 번호를 바꿨는데 바뀐번호를 저장하지 않아 옛날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병조는 새로운 번호로 연결이 되는 서비스 신청을 하지 않아 즈그 아부지는 하루종일 응답없는 전화만 했다는 것.

그러게..그때 잘 넘어갔으면 아빠전화기에 저장된 번호 수정을 했을것인데 하도 난리를 쳐서 그것도 수정을 안 했으니..

 

어제 저녁을 먹으며 어지간히 밥그릇 다 비우고 상민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야이 지지배야,(상민이 부르는 말) 밥이 맛있나?"

"응 아빠, 맛있는데?"

"나는 입맛이 없다못해 미각을 잃었다 지지배야 병조 생각하면 밥이 안 넘어가...."

밥 그릇이 다 비워져있고 거기에 삼치조림 발라 먹은 뼈다귀 담아 놓은 밥그릇을 힐끗 보고 내 눈을 맞추던 상민이..

<아, 미각을 잃으셨다면서 빈 밥그릇은 뭥미?>하는 눈짓을 보낸다 ㅋㅋㅋ

 

그러게 고스방,  애들한테 어지가히 무섭게 해..그 애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우리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질거야. 있을 때 재미있게 살갑게 정스럽게 잘 지냅시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