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0. 4. 6. 20:05

요새야 산에 가서 나무나 깔비 끌어와 밥 해묵는 집구석이 어디있나? 첩첩산중 꼴째기에 살아도 그녀르꺼 엘피지 가스 한통 타앙` 소리 나게 내려 놓으면 많게는 석달, 적게는 한 달 정도 쓰니 부엌 천정에 끄시름 생기게 불 때서 밥 하는 집은 없지를.

그러니 산에 나무를 산더미같이 간벌을 해서 자빨트리놔도 언놈 와서 나무 해가는 사람이 없다. 그냥 그대로 비와 바람을 맞으며 젖었다 마르다 바람에 풍화가 되어간다. 옛날 사람들이 현세에 하루라도 소풍을 나와 산에 가 본다면 기얌을 할 것이다. 그야말로 깔비며 솥깝들이 지천이고 도끼만 갖다대면 하루에 나뭇짐 서너단 묶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옛날 생각나지. 70년대.

그 땐 치산치수라 하여 박통이 4대강 유역개발과 녹화사업이란 명목하에 벌거숭이 산에다 나무를 엄청 심었다. 혹간 나무하러 가서 감시원한테 들키면 그야말로 큰 일, 면서기들은 완장 찬 유세를 떠느라 나무하다 걸린 사람들에게 호랭이보다 더 무섭게 지랄을 떨었다. 나는 도시에서 나서 자라 그 자시한 일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방학 때 합천군 청덕면 오촌 아제 집에 놀러 가서 나보다 두 살 더 많은 오빠랑 산에 나무하러 가는데 따라갔다. 그 때 오빠가 고등학교 들어 갔을 때인데, 지금 고딩 일학년하고는 비교가 안되게 그 당시 고딩 일학년 오빠는 상일꾼이였다. 작은 톱을 수건에 둘둘 말아 잠바때기 속에 넣고 지퍼를 잠그고는 산에 슬슬 올라간다. 사람 눈에 안 띄는 곳까지 들어가서는 나무 밑둥치에 톱질을 삼분의 일만큼만 해 놓고 양지 바른 넘으 집 산소에 오빠랑 나란히 앉아 뭔 얘기를 하는 척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한 며칠 지나면 다시 톱을 챙겨서 잠바떼기 속에 감추고 저번에 잘라 놓은 나머지 부분의 1/2을 또 잘라 놓고 내려온다.

나무는 물을 끌어 올리지 못해 시남고남 죽게 마련인데, 그럼 하루 날 잡아서 마지막 부분을 베서 자빨트려 놓는다. 저녁답 어둑할 때 산에 올라가서 그걸 잘라 마른 덤불로 덮어 놓고는 겨울 내도록 두어 동가리씩 갖다 나르는 것이다. 그렇게 살았다.

 

오빠의 여동생 상옥이는 일찍부터 부엌일을 책임졌다. 오촌아지매는 아침밥을 딸에게 미뤄놓고는 부엌일에서 일찍 손을 뗐다. 옥이는 나랑 동갑인데 내가 이불 속에서 군불의 마지막 따스함에 행복해할 때 옥이는 일어나 부엌 구석에 퇴침같은 나무 토막을 깔고 앉아 아침을 했다. 웃목의 콩나물을 뽑아 씻어 콩나물 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난 아궁이 재를 끌어 모아 호호 불며 불기운을 돋워 된장을 끓였다. 오지 물독에서, 만든 두부를 꺼내 김치찌개를 끓이고 가마솥에서 김이 설설 나는 밥을 퍼서 부엌과 방 사이에 난 작은 쪽문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방에서 두레상을 펴고 옥이가 건네주는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상을 차렸다. 오빠와 동생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옥이가 가마솥에 물을 붓고 잔솔가지를 한 차례 아궁이에 더 밀어 넣었다. 몽당빗자루로 깔비 더미쪽으로 지지부리 딸려온 것들을 싹 쓸어 넘기면 아침 식사 준비가 끝이다. 옥이는 창녕 사는 남자와 혼담이 오가고 시집을 갈 때까지 동생들에게 그렇게 삼시 세끼 밥을 지었다.

 

옥이는 창녕 사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서울에서 잘 살고, 그 때 호분지로 방 안에 앉아 밥을 날름날름 받아 먹던 나는 촌구석으로 시집을 왔다. 에이, 나뭇단 이야기 할라는데 왜 이야기가 옆길로 새노.

 

올해 초 동네에서 이장이 농사 짓는 시사답을 새로 마련하였다. 누대로 내려 오던 시사답이 지방도로로 편입 되는 바람에 보상금으로 앞들에 새로이 농토를 마련하였다. 이장은 이 농토에 농사를 지어 시사답을 물려 준 조상의 제사를 가을에 지내주는 것이다. 새로 산 시사답은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다. 팔백 칠십평 반듯한  농토를 장만해 놓고서도 걱정이다. 이걸 어떻게 농사를 짓냐..우리집꺼 짓는대도 해마다 헉헉 바튼 숨을 내쉬는데...그러나 어쩌겠는가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올라와도 자슥놈을 공부 시키자면 더 허리를 꾸부려야지...이렇게 마음 먹자 심정은 환해진다. 걱정보다 몸빼이 갈아 입고 나가면 일은 훨씬 쉽다.

포도나무 전지해 놓은 것을 들어 내야하는데 어이쿠나..나무가지가 장난이 아니다. 끈을 가지고 가서 낫으로 가지를 끌어 모은다. 제 맘대로 커 나간 나무가지들이 제가 큰 원래의 탄력과 모양을 유지하느라 중구난방이다. 가지런히 놓구선 끈으로 볼끈 잡아 맨다. 한번 만에 제대로 조여지지 않으니 장화신을 발로 나뭇단을 움찔 밀어 밟으며 끈을 조인다. 그래도 매듭을 하자면 또 비닐끈이 미끌어져 간격이 느슨해진다. 끈을 조이면서 무르팍으로 한번 더 나뭇단을 슬까른다. 나뭇단과 끈과의 팽팽한 긴장이 극도로 올랐을 때 나는 어금니를 옹실물며 나뭇단 매듭을 짓는다.  낫으로 끈을 조금 남기고 싹, 잘라낼 때의 그 희열.

 

나뭇단을 불끈 들어 손수레에 패대기치듯 올려 놓으면서 나는 또 한번 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 첫 호흡을 하던 때처럼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태초의 숨을 쉬어 본다.

종일 바람은 하천을 넘나들며 이리저리 몰아쳐 불고, 슬리는 보랏빛도 아니 보이는 해질녁에 바짓가랭이에 묻은 개바닥 흙을 털어 낸다.  아울러 장화도 한 짝씩 차례로 벗어 속에 들앉은 흙들을 털어 낼 때, 순간 나는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린  우아한 새, 두루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