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0. 4. 27. 19:16

<주끼기>도 오래 하지 않으니 이제 자판 우에 손가락 얹어 놓으면 뭐라고 나불거여야할지 막막하다.

4월 16일에 포스팅하고 한 열흘 쉬었다고 그 수다가 어디가것어? 하면 대답하리 "어디 가삐리고 영 안 와요"라고

 

농사일 하니라고 바쁘면 내가 또 그 값을 주끼느라고 열심히 들락거렸을텐데 그것도 아녀. 그냥 바람불어 일 못하고, 비와서 땡땡이, 어영부영 또 하루...이렇게 슬픈 사월이 가고 있네. 나라 안팎도 여간 시끄러운게 아니여서 나라도 입 좀 다물고 있자 싶은 마음이였는데 그래도 가끔 허던 짓은 해줘야 하니까.

 

 

1.

지난 일요일은 오후에 서울에 갔네. 대구 올케 친구들이 토요일에 반야사로 놀러 와서 일박을 하고 오후 네시쯤 헤어진다기에 서울에서 온 올케 친구차에 염치 좋게 올라타서 서울을 갔어. 오랜만에 가는 서울.

서울은 여전히 바쁘고 분주하고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돌아가네. 광나루에서 전철을 타고 백석까지 간다.

백석 천년부페 2층에 자리잡은 정형외과에 입원한 시누형님 문병을 잠깐 하였다. 환갑을 지난지가 한참이나 됐는데도 매번 어머님 아버님을 안타깝게 하는 형님. 삶이 처음부터 잘못 된 것은 아닐것인데 왜그런지 그 형님은 형편이 맨날 그렇다. 오랜만에 형님 딸 민주와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는다.

집집마다 사연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이렇다 저렇다 시원하게 풀릴 방도도 없이 사연은, 꼬이고 너덜너덜해져 애초 처음 사연은 어디로 가고 반목과 갈등의 상처들만 덧나서 인생을 쑤시고 들어온다. 그게

내 팔자와 니 팔자인데 어떡하겠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옆에서 지켜보자니 답답하고 애들코...그렇다.

 

마땅히 병원에서는 보호자 침대도 없고 그렇다고 조카네 집에 갈 여건도 되지 않아 양샘에게 전화했더니 분당으로 오란다. 양샘은 그 날 분당에 있었다.

양샘이 건강이 갑자기 좋지 않게 되어 병원에 있다가 다시 퇴원을 했는데 상태가 여의치 않아 검사를 받아야하는데 혼자 가기가 힘든 상황이였다. 양샘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건 말 안해도 다 알 수 있는 상태다. 거기다 삼성의료원이 어떤 곳이냐. 오가는 사람 쳐다만 봐도 병명 두어가지 득템할 것같은 분위기 아니던가.

밤 10시에 강남역가는 버스를 타고 사십여분 가서 내려 분당가는 버스를 타려 했는데 이미 버스 막차 시간이 지났다. 할 수 없이 지하철을 이용해서 정자역까지 이동하여 집을 찾아가니 12시가 넘었다. 촌 아지매가 불꺼진 건물 사이를 허연 저고리 검정 바지를 입고 유령처럼 지나간다. 집주인 되는 아저씨가 마중을 나오셨다. 집에 들어가서 양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번에 우리집에 올 때는 혈색도 좋고 상태도 아주 좋아서 울 시엄니가

날보고 "전에 오던 사람맞냐? 얼굴이 훨썽 좋아져서 못 알아봤네"하셨는데 갑자기 왜이런겨?

 

이게 뭐 갑자기 그런 것이겠느냐. 그 한 몸으로 온 세상을 받아 내자니 힘이 든거지, 누구 하나 나눠서 짐 져 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움직이는 삶이 어찌 고단치 않겠는가. 울컥한다.

손 닦고 방에 들어가 있으니 오후 다섯시부터 다리에 쥐가나서 아주 죽겠단다. 울다 울다 지치고 참다 참다 지치고 ...밤새도록 그러는데 옆에서 보기 딱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한 숨도 못자고 뜬 눈으로 그 아픔을 참아낸다. 그 옛날 고문 받을 때보다 더 아프단다. 아파서 아파서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이를 악물고 참아내다가도 울음이 터져나온다. 이렇게 아파도 안 죽는데 죽을려면 얼마나 더 아플까...무섭단다.

 

새벽 여섯시에 병원으로 출발을 했다. 삼성병원 채혈실은 임상병리과에 딸린 조그만 방이 아니다. 채혈공장이다. 채혈한 혈액대롱을 컨베이어 위에 올려 놓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번호표를 받아 대기하고 있다. 도대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픈 것일까.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고 의사의 진료를 받고 양샘은 재입원을 하였다. 준중환자실에 그녀를 놓아두고 돌아 나오는데 뭐라 말로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다. 모쪼록 천지신명이 도와 건강이 다시 회복되어 우리집에 떡 사들고 오실 날을 기다려본다 .

 

2.

본래의 내 목적은 양샘과 같이 병원을 가는 것이였으나 거길 가기 위한 명분은 다른 것을 앞서 내세워야한다.

바로 시누형님의 병문안.

형님이 아들 교통사고 난 병원 수발 하느라고 생몸살에다 맨날 음식을 해서 병원 나르느라 오십견이 왔다. 결국 나이에 과한 노동으로 인한 병이다. 저번에도 무릎이 아파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기에다 대고 울고 하니 아버님이 돈을 보내주셨다. 매번 그런 식이니 고스방은 옛날 그 형님이 자기 아플때 간호 해 준 고마움으로 도움을 주더니만 이젠 고스방도 지쳤는가 "형님 병원에 입원 하셨데요" 하고 내가 말하니 "몰라"하고 짜증이 섞인 대답을 돌려준다. 어이쿠, 즈그 누나 즈그 동생이 모르면 내가 말라꼬 아는 척을 할까...속으로 까꾸장허니 그렇게 생각을 하고 문병 갈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느닷없이 서울 형님 병원에 가본다고 하니 조약돌을 주워가란다. 달포 전에 고스방 차에 손님으로 탄 이가 무릎 관절염이 심해서 물까지 주사바늘로 빼고 그랬는데 조약돌을 구워서 찜질을 하고는 다리가 나았다네. 그러면서 날보고 또랑에 가서 조약돌 한 주머니 주워서 가져 가랜다. 참낸...돌멩이가 얼마나 무거운데 하니 여기서 차 타고 가는데 뭐가 그래 힘드냐?고 한다. 어디 서울 길이 넘의 차 한 번 얻어 타고 가면 도착지에 딱 대댕키는가? 차를 얻어 타고가도 전철타고 한 시간을 가야하는데 그것도 또 중간에서 갈아타야하고..할려다 알았어요. 하고는 또랑에 가서 돌멩이 한 자루 주워 신발 박스에 한 통 담아서는 그걸 들고 간다. 병문안 가는데 돌멩이 들고 가는 사람은 조선천지에 나 밖에 없을겨. 속으로 택배 부치면 되는데 그 돈도 아까와 날 이렇게 부려먹나..하는 생각도 아니드는게 아니였다. 그래도 무식한 여편네는 서울 가라는 허락만 해조도 그게 어디냐고 돌멩이 한 짐 을러매고 서울을 갔다.

형님께 돌멩이를 건네주니 팔이 아파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그걸 구워 누가 내 무릎 위에 얹어 줄꺼나..하는 표정이시다. 돌멩이를 구워 무릎에 얹든 삶아 자시든 내 알바가 아닌데...병원을 나와 분당으로 가면서 으휴...내 팔자는 왜 또 이런가..하고 생각을 했다.

 

3

잠깐 봄날인가 싶다가도 비 오고 바람 불면 이놈의 날씨는 새꼬롬허니 저녁 굶은 시에미 얼굴처럼 토라진다.

피기 시작하는 복숭꽃도 애처럽고 마악 나기 시작한 여린 나뭇잎도 매운 바람 끝을 견디느라 이를 악물고 바람을 피해 얼굴을 돌린다. 고스방은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하더니 밥 빨리 안 준다고 내한테 부애질을 해대고 나갔다. 날씨나 스방놈 기분이나 어찌그리 닮았는고... 나가고 난 뒤 국 끓이는 국솥에 고춧가루를 넣다가 무다히 나도 받은 부애질을 돌려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고춧가루 단지를 패대기치고 싶은걸 손목을 부르르 떨면서 참았다. 참아도 참아도 끝이 없는 목숨의 고통...에혀.